연간 2900억 삭감… 이라크 경제 직격탄
러시아 견제ㆍ무기 판매 손실 방지 의도도

미국이 이라크 주둔 미군 강제철군과 관련, ‘군사원조’ 감축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지원금 삭감과 계좌 동결 등 주로 금전적 제재를 통해 경제를 옥죄겠다는 의도로 계획이 실행되면 반(反)정부 민생 시위에 직면한 이라크 정부에 막대한 타격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중동에서 미국의 대체자로 급부상 중인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속내도 엿보인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14일(현지시간) 연간 2억5,000만달러(약 2,895억원) 상당의 외국군대 지원금 삭감 여부를 국무부와 국방부가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이라크 정부가 현재 5,300명이 주둔하고 있는 미군 병력 철수를 강제하는 상황을 가정해 예산 집행을 보류하거나 재배치할 것을 검토하라는 내용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2020 회계연도에 쓰일 관련 예산의 용도 변경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자금이 유입되지 않을 경우 이라크가 감당해야 할 경제ㆍ군사적 위협은 가늠키 어렵다. 미 행정부의 중동 예산이 대체로 외교안보 전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앙숙 이란의 압박에 대항하고, 극단주의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를 격퇴하며 다자간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일 등이 그렇다. 이 예산이 이라크 국내 경제에 미치는 파급력도 엄청나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는 2017년부터 같은 규모의 자금을 투입해 이라크 국방기관 건설 및 현지 군병력 훈련 등을 돕고 있다. 이라크는 2017년 한 해에만 다른 경제원조를 합쳐 미국으로부터 무려 37억달러 상당의 지원금을 수혈했다.
미국의 원조 감축은 단순한 수사를 넘어 행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미 국방부는 앞서 11일 미국 내 이라크 중앙은행 계좌를 동결하겠다는 엄포도 놨다. 현재 계좌에 예치된 금액은 30억달러에 달한다. 이라크 의회가 미군의 이란 2인자 폭살 작전에 반발해 외국군대 철수 결의안을 가결한 데 따른 초강경 후속 조치다.
시리아 철군을 강행한 미국이 유독 이라크에 매달리는 것은 러시아와 연관돼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신문은 전날 “이라크가 미군 철수에 대비해 러시아제 S-400 대공 미사일 시스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부쩍 중동에 공을 들이는 러시아의 팽창 정책을 감안할 때 이라크를 통째로 내줄지 모른다는 위기의식에서 비롯된 대응책이라는 설명이다.
해외주둔 군사원조 프로그램이 미국 군사장비 구매와 직결돼 있다는 점도 이라크를 버릴 수 없는 이유로 꼽힌다. 30개국에 적용되는 프로그램 기금 총액 61억달러(2018년 기준) 중 84%(50억달러)가 중동 국가들에 투입되는데, 상당 부분이 미국산 무기를 구입하는 보조금으로 구성돼 있다. 결국 자국의 경제적 이익이 안보 논리를 앞선다는 얘기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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