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활용부터 옴니버스 예능까지, 예능이 빠르게 다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다변화를 국내 예능의 전반적인 변화로 읽어도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유튜브가 TV를 위협하는 강력한 플랫폼으로 급부상하기 시작하면서, 과거 안방극장을 통해 시청자를 만나왔던 예능들도 유튜브와의 연계를 통한 콘텐츠를 내놓는 등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이 같은 도전의 물꼬를 튼 이는 지난 해, ‘무한도전’의 종영 이후 1년 4개월여 만에 후속 예능으로 복귀를 알렸던 김태호 PD다. 그는 MBC ‘놀면 뭐하니?’를 정식으로 론칭(편성)하기 전, 동명의 유튜브 채널을 개설해 디지털 버전 ‘릴레이 카메라’ 콘텐츠를 공개하며 깜짝 복귀를 알렸다.
TV 예능이 아닌 유튜브 콘텐츠로의 기습 복귀는 대중의 예상을 완전히 비켜가는 변주였다. 김 PD의 파격적인 시도는 콘텐츠 공개 보름 만에 구독자 20만 명, 누적 조회수 5백 30만 뷰 돌파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유의미한 성공을 거뒀다. 이후 김 PD는 ‘놀면 뭐하니?’를 토요일 오후 시간대에 정식으로 편성했고, ‘유플래쉬’ ‘뽕포유’ 등 유재석을 이용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흥행시키며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안착시켰다.
현재 유튜브 ‘놀면 뭐하니?’ 채널은 TV판 ‘놀면 뭐하니?’의 미공개 영상이나 선공개 영상, 비하인드, 예고 영상 등을 공개하는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과거 유튜브 채널에만 의존했을 때와 달리, 현재 김 PD는 유튜브와 TV 플랫폼을 함께 활용하며 시너지를 창출하고 있지만 여전히 유튜브 콘텐츠를 향한 반응은 뜨겁다. 유산슬의 인기에 힘입어 ‘사랑의 재개발’ ‘합정역 5번 출구’의 뮤직비디오가 100만 뷰를 훌쩍 넘겼으며, ‘합정역 5번 출구’ 응원법 영상 역시 100만 뷰를 돌파한 지 오래다.
여기에 나영석 PD 역시 유튜브를 적극 활용하며 예능 플랫폼의 저변 확장을 알렸다.
나 PD를 중심으로 한 ‘나영석 사단’은 지난 5월 유튜브 채널인 ‘채널 나나나’를 개설, ‘신서유기 외전: 삼시세끼-아이슬란드 간 세끼’(이하 ‘아간세’)의 첫 방송과 함께 본격적인 채널 활용을 시작했다.
현재 ‘채널 십오야’로 유튜브 채널명을 변경한 해당 유튜브 채널을 이용해 나영석 사단은 기존 TV 플랫폼의 방송 공식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예능 방송 공식을 제시했다. 화제를 모았던 5분짜리 TV 정규 편성 콘텐츠는 ‘예고편’의 개념으로 사용하되, ‘본 방송’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하는 방식이다.
방송에 비해 비교적 자유로운 유튜브 콘텐츠의 규제는 나영석 사단에게 새로운 날개를 달았다. 진화한 시청 패턴에 발맞춘 10분짜리 콘텐츠, 과감하지만 웃음 코드를 놓치지 않은 ‘PPL’,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시청자들과의 양방향 소통 등은 젊은 시청자 층에게 폭발적인 호응을 불러일으켰고, 적게는 100만에서 많게는 300만 조회수를 웃도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았다. 또 유튜브 콘텐츠와 TV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연계시킨 결과, 단 5분짜리 편성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아간세’는 3~4%대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데 성공했다.
‘아간세’의 성공 속 구독자 수 148만 명을 돌파한 ‘채널 십오야’를 기반으로 나영석 사단은 두 번째 프로젝트인 ‘라끼남’(‘라면 끼리는 남자’)을 이어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6분짜리 TV 콘텐츠와 풀 버전 유튜브 콘텐츠가 함께 움직이는 형태다. 이 역시 100만 이상의 조회수와, 3~4%대 시청률을 기록하며 만족스러운 성과를 기록하고 있다.
나 PD의 예능판 ‘뒤집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유튜브 플랫폼 활용의 ‘좋은 예’로 지난 해 예능 판을 시원하게 흔든 그가 올해 새롭게 론칭한 ‘금요일 금요일 밤에’(이하 ‘금금밤’)를 통해 ‘옴니버스식 예능’의 지평을 연 것이다.
‘금금밤’에서 나 PD는 스포츠, 과학, 미술, 여행, 요리, 공장 체험 등 각기 다른 6개의 소재를 다룬 10분 남짓의 개별 코너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하는 파격적인 시도를 꾀했다. 코너별로 출연진 역시 상이하다. 이승기의 ‘체험 삶의 공장’부터 이서진이 출연하는 ‘이서진의 뉴욕뉴욕’까지 유튜브의 단일 콘텐츠를 보는 듯한 짧은 콘텐츠들이 60분간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방식이다.
나 PD는 “요즘 프로그램들이 너무 길다는 생각을 하던 중 ‘금금밤’을 만들게 됐다”며 “‘숏폼’ 같은 느낌으로 가벼운 프로그램을 하고 싶은데 방송사 프로그램은 기본적으로 60분을 해야 하니 방법을 찾다가 한 프로그램 안에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둥지를 트는 형태는 어떨까 생각했다. 실험적이고 파편화된 프로그램인 만큼 시청률이 낮을 것을 각오하고 만들었지만 예능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고민에서 만든 프로그램인 만큼 그것이 의미 있는 결과를 가져다 줬으면 한다”고 이 같은 시도에 대한 생각을 밝힌 바 있다.
실제로 지난 10일 첫 방송을 시작한 ‘금금밤’의 시청률은 2.89%로, 나영석 사단의 전작들에 비해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출발을 알린 상황이다. 하지만 ‘금금밤’은 다양성이 축소되고 있는 국내 예능시장에서 새로운 지평을 열고, 대안을 제시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태호 PD부터 나영석 PD까지, 이미 국내 예능계를 주도하고 있는 걸출한 ‘스타 PD’들이 또 한 번 예능판을 흔들며 플랫폼에서 형태에 이르는 예능의 다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들의 성공이 획일화되고 있는 국내 예능계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두 사람을 제외하곤 이 같은 시도를 이끌거나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여전히 새롭게 론칭하는 상당수의 예능은 관찰, 육아, 여행, 먹방 예능 등 ‘트렌드’에 편승한 모습이며, 포맷 역시 기존 예능과 별다른 차별점을 찾기 어렵다. 김 PD와 나 PD가 유튜브 플랫폼의 ‘뒤집기’ 사용법으로 성공 사례를 제시했지만, 이마저도 두 사람의 ‘한정된 성공’으로 끝나 버린 상태다.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로 힘을 실을 후발 주자가 없는 탓이다.
두 PD의 실험적 행보가 국내 예능계에 전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스타 PD의 독주’가 아닌, 이를 타산지석 삼은 국내 예능 시장의 풍성한 발전이다. 실험적 시도를 통한 신선한 재미 추구에 대한 책임은 예능을 만들어 나가는 많은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할 몫이 돼야 할 것이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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