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호주 산불과 관련해 호주의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머독 계열의 언론사들이 이번 산불에 대한 기후변화의 책임을 축소하려 한다는 지적 때문이다. 공공연한 기후변화 회의론자인 머독을 향해 ‘방화범’이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와중에 그의 친아들도 부친 소유 매체들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14일(현지시간) ‘호주 산불에 관한 한 루퍼트 머독은 방화범이다’라는 날 선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저자는 기후변화 석학으로 꼽히는 마이클 만 펜실베이니아주립대 교수. 만 교수는 머독 소유의 더오스트레일리안ㆍ헤럴드선ㆍ스카이뉴스 등의 보도를 거론하며 “호주를 삼키고 있는 엄청난 산불이 방화 때문이라는 ‘가짜뉴스’를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날 머독의 차남 제임스와 그의 아내 캐서린도 이들 매체를 향해 “(기후 위기를) 부정하려는 것에 실망했다”며 공개비판에 나섰다. 제임스 머독은 지난해부터 머독 계열 언론사의 경영에서 손을 뗀 상태다.
실제 머독 일가 소유의 미디어 지주회사 ‘뉴스코프’는 호주 산불의 원인을 기후변화 대신 의도적으로 ‘방화’에 맞춤으로써 여론을 호도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앞서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8일 “뉴스코프가 가짜뉴스 유포 프로그램 ‘트롤’과 자동댓글 기능 ‘봇’을 이용해 방화의 영향을 과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뉴스코프 산하 매체들이 산불 기사를 주목도가 떨어지는 뒷면에 싣거나 과거의 산불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식으로 심각성을 낮추려 한다고 지적했다. 호주 신문시장의 58%를 장악한 뉴스코프 계열사들이 지구온난화로 심각해진 더위ㆍ가뭄ㆍ강풍이 산불에 미친 영향력을 축소 보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머독 계열 언론사들의 보도 행태를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의 소극적인 산불 대처와 연결짓는 시각도 상당하다. 산불이 악화일로였던 지난달에 모리슨 총리는 하와이로 휴가를 떠났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는데, 당시 머독 계열 언론사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모리슨 총리를 적극 두둔했었다. 호주는 세계 1위 석탄ㆍ천연가스 수출국이어서 이번 산불 사태가 기후변화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많지만, 모리슨 총리는 적극적인 산불 대처는 외면한 채 석탄산업 옹호에만 열을 올린다는 비판이 많다.
지난해 9월 시작된 산불로 호주에서는 지금까지 대한민국 면적에 맞먹는 1,030만㏊(헥타르)가 불탔다. 이 과정에서 최소 28명이 숨지고, 2,000채 이상의 가옥이 파괴됐으며 특히 10억마리 이상의 동물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된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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