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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 마음풍경] 시인의 소중함을 이해하는 사회를 꿈꾸며

입력
2020.01.15 18:00
수정
2020.01.15 18:12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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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문법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불꽃처럼 춤추는 언어, 물결처럼 일렁이는 언어, 창공을 박차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언어로 사유하는 힘. 그 속에서 시인의 자유는 싹트고, 시를 읽고 낭송하는 우리들의 꿈도 싹튼다. ©게티이미지뱅크
모든 것을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문법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불꽃처럼 춤추는 언어, 물결처럼 일렁이는 언어, 창공을 박차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언어로 사유하는 힘. 그 속에서 시인의 자유는 싹트고, 시를 읽고 낭송하는 우리들의 꿈도 싹튼다. ©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의 수많은 독자에게 영감을 준 철학자 리처드 로티는 죽음을 앞두고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인생에서 후회되는 게 있다면, 시를 좀 더 많이 읽지 못한 것이라고. 자신이 심혈을 기울여 쓴 글들보다도, 그 어떤 위대한 책들보다도, 시를 읽는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는 철학자의 고백은 어딘가 뭉클하다. 만약 내가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더 많은 시를 읽고, 더 자주 시를 낭독하고, 시의 언어 하나하나가 내 삶의 골수까지 스며들도록 내 마음에 더 많은 여백을 만들고 싶다. 인생에서 그토록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시기는 다시 돌아오기 어려우니.

시인들이 ‘이제는 아무도 내 시를 좋아하지 않아’라는 생각 때문에 시 쓰기를 포기할 때마다, 마치 ‘피터팬’에서 ‘요정 따윈 존재하지 않아’라고 말할 때마다 요정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것 같은 대참사가 일어나는 느낌이다. 시인을 존중하는 사회는 우리의 언어가 더 아름다워질 권리를 지켜주는 사회이며, 단지 쉽고 빠르게 오가는 일상적인 언어를 뛰어넘어 인간에게는 더 높은 차원의 언어적 소통의 열망이 있음을 이해하는 사회다. 시인들은 하나같이 규범과 통제를 못 견뎌 한다. 시의 아름다움 자체가 통제를 벗어난 언어, 고삐 풀린 언어의 생기발랄함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자유로운 언어에는 반드시 뼈아픈 대가가 뒤따른다. 시인이 되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가출을 감행한 헤르만 헤세의 어린 시절은 방황과 좌절로 가득했다. 헤세는 자신을 가르친 선생님들이 괴테 같은 위대한 시인을 우러러 보기는 하지만, 막상 학생들이 시인이 되겠다고 하면 야멸치게 냉대하는 모습에 커다란 상처를 받았다. 이미 위대한 시인으로 인정받는 사람들을 찬미하는 것은 쉽지만, 아직 무엇이 될 지도 모르는 학생들에게서 시인의 싹을 발견하고, 시인의 씨앗을 움트게 해주는 것은 학생에 대한 깊은 사랑과 이해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시인을 외롭게 하는 사회는 시인을 완벽한 이방인으로 만들어 버린다. 마치 너의 그림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며 고흐를 집단적으로 따돌린 아를 사람들처럼, 헤세는 시인이자 방랑자인 자신을 이해해주지 않는 사람들에게 깊은 절망감을 느꼈다. 헤세는 ‘나는 별이다’라는 시에서 이렇게 탄식한다. “나는 당신들의 세계에서 추방되었다./자존심 하나로 자랐고,/자존심 때문에 속았다./나는 국토가 없는 왕이다.” 하지만 헤세는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언어의 도가니에 갈아 부어 영롱한 시를 쓰곤 했다. ‘높은 산 속의 저녁’이라는 시에서 그는 노을 속에 불타는 알프스를 바라보며 왜 어머니는 돌아가셨냐고 슬퍼하는 동안, 문득 그를 깨우는 소리가 있다. “얘야, 엄마다. 벌써 나를 몰라보겠니.” 읽는 이의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환영일까. 너무 커다란 그리움이 환청을 만들어낸 것일까. 어머니의 죽음과 어머니의 생생한 목소리는 논리적으로 양립할 수 없지만, 시에서는 가능하다. “밝은 대낮은 혼자서 즐겨라./그러나 별도 없이 밤이 와/갑갑하고 불안한 너의 영혼이 나를 찾을 땐/언제나 너의 곁에 와 있으마.” 논리를 뛰어넘어 존재하는 시인의 내적 현실, 언어의 문법을 뛰어넘어 꿈틀거리는 마음의 생기발랄한 흘러넘침. 그것이 시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감동의 실체다. 시의 상징과 은유의 힘은 강력하다. 내 이야기를 굳이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지 않아도, 그저 아름다운 시를 읽는 것만으로 모든 고민을 다 털어 놓고 자유로워지는 느낌, 마침내 근심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이 밀려든다. 모든 것을 정확하게, 논리적으로, 문법적으로 기록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불꽃처럼 춤추는 언어, 물결처럼 일렁이는 언어, 창공을 박차고 힘차게 날아오르는 언어로 사유하는 힘. 그 속에서 시인의 자유는 싹트고, 시를 읽고 낭송하는 우리들의 꿈도 싹튼다. 나의 생이 저물어 갈 때쯤, 따스한 감사의 인사를 남기고 싶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시를 읽는 순간이었다고. 이토록 복잡한 통제불능의 언어로 이토록 눈부시고 영롱한 ‘시’라는 존재를 발명해낸 인간의 마음이야말로 우리가 끝내 지켜야 할 인류의 유산이 아닐까.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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