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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북한의 전략적 인내정책

입력
2020.01.16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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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해 첫 현지지도 일정으로 평안남도 순천시 순천인비료공장을 찾았다고 조선중앙TV가 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해 첫 현지지도 일정으로 평안남도 순천시 순천인비료공장을 찾았다고 조선중앙TV가 7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시간은 실재하는 듯하다. 인간의 삶과 죽음은 가는 시간을 느끼게 한다. 낮과 밤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읽으며, 인간은 가는 시간을 가늘게 나누고 동그랗게 만들었다. 달력과 시계가 그 발명들이다. 인간의 주관이 구성한 시간은 진동하며 나선처럼 순환하며 직선처럼 간다. 가는 곳의 불확실이 순환의 영원에 집착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1월 1일이 12월 31일의 그저 다음이지만, 다시 도는 첫 고리이기에 다짐을 하게 한다. 권력이 개입된 주관의 부름 속에서 그날이 의미를 가진다.

긴 2019년 12월 한반도 위기를 지났다. 혹여 전쟁이 없을까를 생각했기에 가늘게 시간을 나누어 보아야 했다. 길고 짧게, 고정된 시간을 느낄 수 있음도 인간의 능력일 듯이다. 주체의 나라 북한은 1월 1일이면 다시금 영원의 시간을 만드는 신년사를 발표하곤 했기에, 2020년 신년사를 기다렸다. 북한의 신년 말보다 신년 행동에 촉각이 가 있기는 했다. 무용한 절대 반지 핵을 가진 작은 국가라는 저변의 생각이 만든 효과였다.

그러나 2020년 신년사는 없었다. 예측이 무너지면 해석의 고통이 따른다. 북한은 2019년 12월 28~31일 열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의 보도로 신년사를 대체하는, 예외적 선택을 했다. 연말의 전투적 결의를 신년의 다짐으로 만든 셈이다. 신년사를 육성으로 낭독하지 않고, 제도인 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 보도를 통해 북한은 그들이 가고자 하는 길을 제시했다. 그 새롭지 않은 새로운 길은, 오랜 시간 했던 북한판 전략적 인내의 긴 시간을 가려 하는 것이었다.

북한은 경제가 ‘기본전선’이지만 핵억제력의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립장에 따라 상향조정”되는 ‘경제ㆍ핵 조건부 병진노선’을 선택했다. “허리띠를 졸라매”는 자력갱생을 바탕으로 핵억제력을 강화하지만 북미 협상의 종언을 선포하지 않는 조건부 병진노선으로의 선회였다. 북한도 “경제건설에 유리한 대외적 환경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임을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 선회의 이유를 두 가지로 정당화했다. 첫째, 자신들은 핵ㆍ미사일실험의 중단과 핵실험장 폐기 등의 선제조치를 취했지만 미국은 상응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미연합군사훈련의 재개와 핵관련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북한이 든 사유였다. 둘째, 북미교환의 도식으로 미국이 자신에 대한 적대정책을 철회하면 비핵화의 길을 가겠다 했다. 한반도 ‘평화체제(peace-keeping mechanism)’가 구축될 때까지 전략무기 개발을 중단 없이 진행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그러나 구체적 내용은 제시하지 않는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했다. 북한의 새로운 방법은, 정치ㆍ외교적, 군사적 담보를 기초로, ‘외교전선’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북한의 전략적 인내정책은, 자력갱생, 핵억제력, 외교전선 셋의 조합이다.

1월 1일 북한의 전원회의 보도에 남북관계는 없었다. 남북관계에 대한 희망적 사고를 담은 2018년과 2019년의 신년사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남한의 선제조치가 있다면 남한을 외교전선에 포함시키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남한에 대한 무시정책을 계속하겠다는 것인지 알 길은 없다. 한국정부는 신년에는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남북관계에서 운신의 폭을 넓히겠다고 했다. 미국으로부터 남북관계에 대한 자율성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비관할 단계는 아니라고도 했다. 대선국면에 접어든 미국도 1월 초순 협상 재개 의사를 북한에 전달했다. 북한은 1월 11일 외무성 고문 담화의 형태로,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요구사항들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는 원칙적 대응을 했다. 남한에 대해서는 ‘한집안’이 아니라는 무시를 보냈다. 근본문제의 해결을 생각하며 장기전을 가고자 하는 북한과 국내정치적 일정을 고려한 한미의 미봉이 조우할 지점이 있는가가, 길 2020년 벽두의 질문이다.

구갑우 북한대학원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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