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독자권익위원회가 지난달 18일 본사 18층 대회의실에서 지난해 12월 본보 보도 기사에 대해 논의했다.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장인 이민규 위원장과 김혜원(민음사 편집부장) 신성현(한국리서치 여론조사본부 수석부장) 우재욱(변호사) 이은기(연세대 사회학과) 조희정(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전임연구원) 최광범(한국언론진흥재단 신문과방송 편집장) 위원, 이충재 한국일보 수석논설위원, 이성철 콘텐츠본부장이 참석했다.
이민규
한 해를 돌아보면 각종 현상을 일차적으로 비판하는 보도에서 벗어나 거시적 차원에서 맥락을 짚어주는 기획, 탐사보도가 많았다. 시의적절한 어젠다를 이끌어가는 한국일보 기획력에 많은 기대와 희망을 갖는다. 최근 혼탁한 언론환경을 개선할 방법으로 언론계, 학계에선 현상 비판만 하기보다 대안을 제시해 사회를 변화시켜야 한다는 ‘솔루션 저널리즘’을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11월 28일자 1면 [하루 1745원… 어린이집 ‘흙식판’ 22년째 그대로], 12월 12일자 1면 [어린이집 ‘흙식판’ 논란에… 급식비 2500원대로 인상] 기사는 그 실천 사례다. 12월 13일자 1면 [그때 그 사람만 재소환… 한국 정치 늙어간다]는 [스타트업! 젊은 정치] 시리즈를 종합정리한 게 아닌가 평가한다. ‘사실은 범람하는데 실체적 진실은 보이지 않는다’는 여론 속에서 한국일보가 솔루션 저널리즘에 앞장서 주길 바란다.
최광범
지난 한 해 한국일보가 정말 잘한, 언론을 선도한 두 가지를 칭찬한다. 첫째, [스타트업! 젊은 정치] 기획이다. ‘한국 정치의 의제 설정을 했다’고 감히 말한다. 다른 신문도 한국일보가 설정한 의제를 따라오고 있다. 최근 핀란드 34세 여성 총리는 국내언론의 큰 주목을 받았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일보 창간 기획은 2019년 언론의 정치 이슈를 선도했다. 두 번째, 인도네시아ㆍ베트남에 특파원을 두고 꾸준히 동남아 이슈를 의제로 설정하고 있다. 두 나라는 인구 규모나 경제발전 속도를 감안할 때 더욱 가까워질 나라지만 우리가 간과해왔던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일보가 자리매김했다. 이런 노력의 결실이 11월 25일자 1면, 6면 한국 언론 최초의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의 단독 인터뷰]로 맺어졌다. 부수적으로 지난 회의에서 여야를 싸잡아 비판하는 기사와 지면 배치는 한국일보 지면의 힘을 약화한다는 점을 강하게 지적했었다. 이 의견 제시 이후 눈에 띄게 개선됐다. [탐사리포트: 두 얼굴의 배임] ‘배임죄’의 문제점을 지적한 탐사보도는 언론계에 모범이 될만한 기사다. 이현령비현령식 배임죄 피해자 사례를 비롯해 다양한 각도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검찰권 남용 문제까지 연결했다. 반면 [‘삼성 노조 와해’ 이상훈 의장ㆍ강경훈 부사장 법정구속] 기사는 사안의 중요성, 타지의 배치에 비해 뉴스 가치를 지나치게 축소했다.
조희정
전체적으로 소재의 차별화는 있었지만, 제목 차별화는 부족했다. 제목이 반 이상의 역할을 한다. 신중해야 한다. [뷰엔: 이 많은 장비를 싣고… 소방관은 오늘도 달립니다]는 소재가 좋았다. 텍스트를 읽지 않아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SNS에서 유행하는 콘텐츠 가공 기법이다. 많이 고민해 작성한 양질의 기사다. 미군기지와 조병창 건물을 다룬 [뷰엔: 국내 언론 최초 ‘캠프 마켓’ 내부 취재]는 취재의 힘이 느껴졌다. [위기의 농업, 4차산업혁명을 만나다]는 과학기술시대 농업 문제를 일목요연한 데이터로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대농과 소농의 문제로 차별화해서 접근하면 더 깊이 있는 기사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12월 4일자 16면 [같은 일본, 다른 일본] 시리즈는 과잉 정보교류, 오해와 조작의 문제에 대한 진단이 돋보인다. 매우 유익한 칼럼이다. 편향적이지 않은 사람들의 생활 이야기를 집어넣어서 굉장히 좋았다. 12월 11일자 16면 [신일본, 신인류] 기사도 매우 좋았다. 사람들이 언론과 방송을 평가할 때, 저널리즘이 현실과 다르게 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 측면에서 두 기사는 앞서가는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제일 재미있게 읽었다.
이은기
12월 12일자 15면 [뷰엔: 자선단체 빈곤 마케팅]의 경우 빈곤마케팅 문제는 여러 언론에서 많이 지적했으나 [뷰엔]으로 다뤄 더 효과적이었다. 명징하게 의미가 전달됐다. 11월 21일자 2면 [청주女교도소 교도관 24시간 체험]은 기자가 24시간동안 지내면서 쓴 기사인데 목격한 풍경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나 싶다. 밖에서 쉽게 진입할 수 없는 공간이라 무언가 있겠다 생각했으나 교도관 입장에서 교도소를 훑는데 지나지 않았다. 12월 10일자 10면 [현장을 가다, 이슈를 읽다: <3> 결혼이주여성, 평등한 가족으로 인정한다면]은 ‘현장감’이 없어 아쉬웠다. 기존 자료를 활용한 기사 같았다. 11월 27일자 4면 [패스트트랙 법안 대해부: <상> 공직선거법 개정안]은 이슈를 꾸준히 따라가지 않는 독자라도 내용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인포그래픽으로 차분히 알려줬다. 12월 11일자 15면 [‘모래판 위 짐승돌’ 씨름 뉴트로 이끌다] 기사를 보고 놀랐다. 상품화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나 마는 ‘짐승돌’이라는 제목과 사진 배치는 너무 노골적이다. 12월 6일자 1, 2면 [김용균 1주기] 조남주 작가의 특별기고는 ‘우리가 수많은 통계화되고 수치화된 죽음을 목격하지만, 그것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기사는 작가가 지적한 ‘숫자’화 된 죽음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우재욱 위원
12월 14일자 1면 [노동자들의 밤잠 살라먹고 오늘도 ‘24시간 풀가동 코리아’]와 9면 [24시간 불야성 코리아, 직접 체험해 보니… ]는 시의성 있는 주제인 야간노동 규제 문제를 다루었으나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렀다. 기자가 심야 올빼미 체험을 하며 겪는 일도 다소 작위적이다. 11월 20일자 1면, 2면, 3면, 4면 [文대통령 ‘국민과의 대화’]는 전체적으로 안일하고 밋밋하다. 2, 3, 4면에 대통령 발언 요약 기사로 채울 게 아니라 검토와 비판이 주를 이뤘어야 한다. 지면 대부분을 대통령 발언 요약으로만 채운다면, 전날 방송으로 시청한 사람이 다음날 신문을 볼 이유가 있겠나. 12월 9일자 30면 [이영성 칼럼: ‘김진표 논란’ 유감]에서 김진표 논란은 민주당 정부의 자기모순이라고 표현했다. 현 정부의 일 처리 방식 문제를 제기한 데 대해 공감한다. 12월 14일자 16면 [임소형 기자의 과학 아는 엄마 기자: 마법사 엘사와 빙의 김지영]은 겨울왕국2의 엘사와 82년생 ‘김지영’에 대해 기존의, 대다수의 평가와 다른 시각을 보여줘 신선했다. 12월 12일자 30면 [지평선: ‘하수’ 강금실 ‘고수’ 추미애]는 두 여성 법무부 장관을 잘 대조했다. 그러나 추미애 장관이 ‘고수’일지 더 지켜봐야 한다. 강 전 장관의 대중적 인기에 비해 실질적 효과는 거기에 못 미친다는 평가는 있다. 그렇지만 ‘하수’ 표현은 과하다. 듣기에 따라 모욕적으로 느낄 수 있다.
신성현
11월 21일자 1면 [“韓 초미세먼지 32%가 중국發 中 첫 인정… 고농도 때 분석은 빠져], 2면 [12~3월 고농도 땐 ‘중국發’ 70%로 치솟는데… 中 입김에 연평균치만 공개]는 우리나라 초미세먼지에 대한 중국의 기여도와 관련한 정부발 보고서의 문제점 및 한계점을 잘 지적했다. 그래픽으로 기사 내용을 보기 쉽게 잘 정리했다. 11월 29일자 28면 [논담: 마동훈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인터뷰 대상자가 언론학 교수라 미디어 관련인 줄 알았으나 홈스쿨링 내용이었다. 경험을 바탕으로 홈스쿨링의 주의할 점, 의미 등을 생활과 연계해 자세하게 다뤘지만 다른 사회적 배경의 부모 사례나 홈스쿨링 관련 통계도 같이 보도했다면 독자 이해도가 더 높아졌을 것 같다. 11월 29일자 1면 [교육부,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 4면, 5면 [대입 정시 확대], 31면 사설 [‘공교육 정상화’ 역행 우려 외면한 대입 정시 확대 발표] 중 사설이 좋았다. 대입 공정성 강화 방안 관련 고교의 다양성 교육에 대한 부정적 영향처럼 파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12월 5일자 13면 [한부모도 한가족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지원 기준], 12월 6일자 13면 [한부모도 한가족이다: 강제력 없는 양육비 이행 규제]는 한부모 가정이 겪고 있는 양육과 교육 빈곤 문제를 잘 짚었다. 일정 소득 이상이 될 때 유예 기간을 도입하는 대안도 제시하고 있다.
김혜원
11월 28일자 23면 [출판계에 던진 ‘제안들’ ‘입장들’로 독자들 눈도장 받았어요]는 오래도록 천천히 유니크한 100권의 목록을 만든 출판사 워크룸프레스에 대한 기사다. 100권 돌파 이벤트는 출판계에서 익히 알고 있지만, 인터뷰 기사를 비중 있게 쓴 곳은 한국일보뿐이다. 중소출판사가 처음 기조대로 꾸준히 책을 낸다는 것 자체가 무척 어려운 일이라 의미 있게 봤다. 11월 26일자 20면 [제52회 한국일보문학상 ‘품위 있는 삶’ 정소현] 등 11월 본심 작품 열 편을 심사위원들이 돌아가며 매주 소개했다. 올해의 주요 작품들을 맛보기 하는 느낌이었다. 1968년 이래 한국일보문학상 역대 수상자와 작품 목록을 보면 문학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상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 많은 출판사가 응모하고 있고 후보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자랑스러워한다. 11월 30일자 13면 [김지은의 삶도: 유산슬(유재석)의 코러스 김효수]는 화제의 유산슬 소식이 많지만, 잘 모르던 음악인 인생을 한 지면에서 유쾌하면서도 감동적으로 끌어냈다. “톱이나 1등이 아니라 온리 원(only one)이 되는 게 중요하죠”가 기억에 오래 남는다. 12월 2일자 22면 [댄스 강세인 7월에 발라드 열풍?... ‘음원 사재기’ 의혹 일파만파]도 잘 봤다. 차트 왜곡 현상 관련 기사가 여러 번 나왔으나 이 기사 분석이 좋았다. 차트 시장에서 공정성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 후속 기사가 있으면 한다. [김영민 한국이란 무엇인가]는 초기에 비해 글의 방향이 점점 독자 친화적으로 가고 있다.
이민규
11월 26일자 2면 [美 AMA 강타한 방탄… 비영어권 가수 첫 ‘최고 인기그룹상’], [벼락스타 된 ‘펭수’ CF모델 러브콜 쇄도]가 인상적이었다. BTS와 펭수가 종합면인 2면에 배치됐다. 바람직한 선택이다. 정치, 경제, 사회, 법조관련 기사를 종합면에 보통 배치하는데 문화관련 기사로 넣어 중요성을 강조했다. 2019년 문화면을 전체적으로 보면 전반기에는 영화 ‘기생충’, 후반기엔 과도할 정도로 ‘겨울왕국2’에 집중했다. 한쪽에서는 스크린독점 문제를 지적하며 겨울왕국2를 비판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다양한 인터뷰나 기사, 사진기사를 통해 결과적으로 많이 홍보했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겨울왕국2 관련 기사가 너무 많았다.
정리=정진황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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