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단계 무역합의 서명식 앞두고 계속 미뤄왔던 환율보고서 발표
미국산 대량 추가 수입 등 약속한 중국의 합의 파기 막기 위한 포석
트럼프 ‘정치적 이용’ 비판 감수… 대선 때 업적으로 부각시킬 듯
미국이 중국과의 1단계 무역합의 서명식을 이틀 앞둔 13일(현지시간)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을 전격 해제했다. 협상국면에서 꺼냈던 대(對)중 압박조치를 거둬들여 화해의 손짓을 보내는 동시에 대선을 앞두고 중국의 협상 파기 가능성을 봉쇄함으로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를 부각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미 재무부는 이날 발표된 ‘주요 교역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정책 보고서’(환율보고서)에서 “미국의 주요 무역파트너 중 누구도 환율조작국 기준에 맞지 않았다”며 중국을 환율조작국에서 제외하면서 한국ㆍ일본 등과 함께 한 단계 낮은 ‘환율관찰대상국’에 포함시켰다. 스티븐 므누신 장관은 별도 성명에서 “중국이 (1단계 합의의 일환으로) 외환정책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위안화 가치의 경쟁적 평가절하 자제를 약속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미중 무역협상이 결렬을 거듭하던 지난해 8월 1994년 이후 25년만에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중국 인민은행이 미국의 고율관세 부과 효과를 상쇄시키기 위해 금융위기 이래 처음으로 위안화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도록(위안화 가치하락) 방조했다는 이유에서다. 다만 환율조작국 지정이 곧바로 중국에 대한 제재로 이어지는 건 아니어서 당시에도 무역협상을 유리하게 이끌려는 상징적인 대중 압박 조치라는 해석이 많았다.
미국의 이번 결정은 미중 간 긴장을 완화시키려는 휴전 신호로 해석된다. 류허(劉鶴) 부총리가 이끄는 중국 대표단이 1단계 합의 서명을 위해 워싱턴에 도착한 날에 맞춰 발표가 이뤄진 점도 주목을 끌었다. 미 재무부의 환율보고서는 통상적으로 4월과 10월에 발표되는데, 지난해 첫 반기 보고서가 5월에 나와 두 번째 보고서는 11월쯤 발표될 것이란 관측이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중국과 무역협상을 매듭지을 때까지 환율조작국 지정을 지렛대로 삼으면서 일정이 계속 미뤄졌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환율정책을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비판을 감수한 채 환율조작국 지정을 해제한 건 대선을 염두에 둔 조치로 보인다. 중국이 미국산 제품 대량구매 약속을 이행할 경우 자신의 업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다. 정치 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중국이 1단계 합의의 ‘교역 확대’ 항목에서 향후 2년간 2,000억달러(약 231조1,800억원) 규모의 미국산 제품을 추가 수입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중 공산품 규모가 750억달러로 가장 크고, 에너지 분야(500억달러)와 농산물(400억달러) 수입도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동시에 미국은 중국의 합의 번복 가능성에 여전히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사실상 11월 대선까지는 2단계 협상 진전이 어려운 상황에서 1단계 합의가 파기될 경우 거센 역풍을 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중국 강경파인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ㆍ제조업 정책국장은 이날 공영 라디오방송 NPR인터뷰에서 “합의사항이 지켜지지 않을 경우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은 90일 이내에 관세를 재부과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워싱턴=송용창 특파원 hermeet@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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