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국 최초다. 다음달 9일 치러질 제92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서 국제장편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을 넘어 작품상과 감독상, 각본상, 미술상, 편집상 등 6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한국 영화가 한번도 가지 못한 길이다. 그래서일까. 기대는 더 커졌다. ‘기생충’이 “1인치 자막의 장벽”마저 넘어 비영어 영화 최초 아카데미상 작품상 수상이란 기록까지 거머쥘 수 있을까. 역대 기록을 보면, 장담하긴 이르다.
아카데미상은 봉준호 감독 표현처럼 ‘로컬’이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상업 영화관에서 1주일 이상 상영(하루 3회 이상)하면 후보 자격이 생긴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자국 상업영화를 즐기는 미국 관객 성향을 감안하면 의외로 까다로운 기준이다. 아카데미상이 미국 영화들 잔치가 된 이유 중 하나다. ‘기생충’은 6개 부문 후보 지명만으로도 이 기준에 균열을 냈다.
비영어 외국 영화로 아카데미상 작품상에 오른 건 ‘기생충’이 12번째다. 아시아 감독으로는 대만 리안 감독이 ‘와호장룡’ ‘브로크백 마운틴’ ‘라이프 오브 파이’를 작품상 후보에 올렸다. 하지만 ‘와호장룡’은 미국 자본이 참여한 합작 영화였다. 나머지 두 영화는 아예 미국 영화다. 순수 아시아 영화로는 ‘기생충’이 처음이다. 비영어 외국영화 감독으로서 봉 감독은 역대 33번째로 감독상 후보다. 1965년 일본 데시가와라 히로시(‘사구의 여인’), 1985년 구로사와 아키라(‘란’), 2001년 리안(‘와호장룡’) 이후 아시아 영화 감독으로선 4번째다.
수상 실적은 신통찮다. 비영어 외국영화에 아카데미가 작품상을 준 적은 아예 없다. 감독상은 지난해 ‘로마’의 알폰소 쿠아론 감독이 처음 받아갔다. 그런데 한 꺼풀 벗겨보면 속내는 그렇지 않다. ‘로마’ 제작 주체는 미국업체 넷플릭스다. 쿠아론 감독도 멕시코 출신이라지만 미국 이민자다. 스페인어로 제작된 미국 영화인 셈이다. ‘기생충’이 작품상과 감독상 후보에 올랐다지만, 고전이 예상되는 이유다.
각본상은 상대적으로 문턱이 낮다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기생충’ 포함, 비영어 외국영화는 63차례나 각본상 후보로 올랐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대부분 유럽 영화였다. ‘기생충’이 아시아 최초다. 상을 준 적도 많지 않다. 모두 다섯 차례였는데 2002년 스페인 영화 ‘그녀에게’가 마지막이다. 언어적 장벽과 무관한 미술상, 편집상 등 기술 관련 상은 그나마 문턱이 낮다는 평이다.
시상식까지 남은 기간은 4주.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6,000여명)의 마음을 사기 위한 홍보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는 “‘기생충’의 국제장편영화상 수상은 확실시되지만, 작품상 감독상 수상은 만만치 않을 것”이라며 “남은 기간, 막판 굳히기가 중요하다”고 내다봤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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