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는 이제 우리의 바람과는 완전히 반대로 ‘온갖 종류의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곳’이라는 평판을 얻게 됐다.”
이란이 우크라이나 여객기 격추 사실을 인정한 뒤 파블로 클림킨 전 우크라이나 외교장관은 자국이 처한 외교적 상황을 이렇게 진단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3일 전했다. 의도치 않게 굵직한 국제 이슈에 휘말리면서 국가 이미지 실추와 그로 인한 직간접 피해를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 연구기관 애틀랜틱 카운슬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정치신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 취임과 함께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패 개혁에서 상당한 성과를 이뤘다. 지난해 총선에서 초선의원 비율이 80%에 이를 정도로 ‘물갈이’가 이뤄진 뒤 국회의원 면책특권이 폐지되고 불법축재 관련법도 개정됐다. 지난해 2, 3분기 국내총생산(GDP)은 각각 전년 동기 대비 4% 이상 증가하는 등 국가 전체적으로 활력을 되찾는 듯했다.
하지만 근래 우크라이나가 직면한 대내외적 상황은 암울할 정도다. 동부 돈바스 지역의 정부군과 친러시아 분리주의 반군 간 교전은 5년 넘게 이어지다가 지난달에야 겨우 ‘휴전’에 이르렀다. 지난해 7월 젤렌스키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통화로 촉발된 미국 내 탄핵 사태의 여파는 해를 넘어서도 여전하다. 게다가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충돌 상황에서 자국 민항기가 격추되는 비극까지 겪었다.
더 심각한 건 국제정치의 소용돌이 속에서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8일 우크라이나 민항기 추락 직후 미국ㆍ캐나다ㆍ영국 등은 이란 미사일에 의한 격추를 주장했지만, 젤렌스키 대통령은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은 채 이들 국가에 정보 공유를 요청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도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사유인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발목이 잡힌 형국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정보 공유를 요청하기 위해 자국 주재 미국대사관과 접촉한 것 자체로 외교적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지난해 재직했던 미국대사와 후임 대사대리가 모두 우크라이나 스캔들의 핵심 증인이라 트럼프 행정부의 눈치를 보면서 입을 맞추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집권한다면 미국과의 불협화음이 커질 수 있는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젤렌스키 대통령이 자국 여객기 격추 사건이 이후 국제분쟁에 갇혀 버렸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기자 크리스티나 베르딘스키는 트위터에 “우크라이나는 타국의 분쟁과 미국 내 정쟁에 끌려다니고 있다”며 “언제쯤 운이 좋은 시기가 올 지 모르겠다”고 썼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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