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변수 반도건설 등장으로 경영권 둘러싼 지분 방정식 더 복잡해져
오리무중(五里霧中),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 새로운 국면을 맞은 한진그룹 총수 일가의 집안 싸움에 딱 들어맞는 표현입니다. 이들의 명운을 가를 3월 한진칼 주주총회를 앞두고 큰 변수가 등장했거든요. 반도건설이 계열사 대호개발을 통해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 보유 지분율을 8.28%까지 확대하면서 ‘3대 주주’로 올라선 건데요. 무엇보다 대호개발은 지분 보유 목적을 기존의 ‘단순취득’에서 ‘경영참여’로 바꿨죠.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등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에 적극 개입하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반도건설이 ‘캐스팅보트’를 쥐게 되면서 한진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벌어지고 이는 주주들 사이의 머리 싸움은 더욱 복잡해졌어요. 반도건설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경영권 향배가 갈릴 것으로 보이거든요. 이제 조원태·조현아 두 사람의 ‘남매의 난’이 아니라, 총수 일가 대 외부세력으로 경쟁 구도가 바뀌는 것 아니냐는 예상도 나오고 있어요. 한진그룹의 경영권 분쟁이 어떻게 결론 날지, 경우의 수를 따져봤습니다.
◇국대급 갑질 가족이 경영권 다툼까지 했다고?
두 남매는 어쩌다 틀어지게 된 걸까요?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지난해 4월 고(故) 조양호 전 회장이 타계하면서 본격화했습니다. 2017년부터 대한항공 사장을 지낸 조원태 회장은 부친의 장례를 마친 지 일주일 만에 이사회를 거쳐 한진그룹 회장에 올랐죠. 장녀인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4년 ‘땅콩 회항’ 사건을 시작으로 동생 조현민 한진칼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 오너 일가의 폭언과 폭행 의혹에 휘말리면서 모든 직책을 물러났어요. 이후 갑질 논란을 일으킨 동생 조 전무는 경영에 복귀했지만, 지난해 말 한진그룹 인사에 조 전 부사장의 이름은 빠졌습니다. 재계에는 조 회장이 경영에서 누나 조 전 부사장을 배제하면서 갈등이 커졌다는 소문이 무성했습니다.
이들 가족은 민법 상 상속 비율에 따라 한진칼 지분을 조 회장 6.52%, 조 전 부사장 6.49%, 조 전무 6.47% 등으로 나눴는데요. 주총에서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지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황입니다. 단일주주로는 최대 지분(17.29%)을 보유한 강성부펀드(KCGI)도 한진 일가의 경영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요. 한편에선 지분율 10%의 델타항공이 조 회장의 ‘백기사’로 분류되고 있죠. 대한항공과 델타는 ‘스카이팀(SKYTEAM)’ 연합체로 일종의 동업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반도건설이 갑자기 튀어나와 경영권 향방을 결정짓는 주요변수가 되면서 상황은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조원태, 엄마 누나랑 싸워놓고 회장 자리를 사수하겠다고?
조 회장의 임기는 3월까지로 주총에서 재선임돼야 회장직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조 회장이 그리는 가장 좋은 그림이 뭘까요? 3월까지 가족간의 갈등을 모두 봉합하고 주총에서 재선임되는 시나리오가 있겠죠. 조 회장은 지난달 30일 이 고문과 공동명의로 사과문을 발표하며 표면적으로는 갈등 봉합에 나섰어요. 조 전 부사장과도 협의를 하자며 손을 내민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물론 물밑에선 치열한 지분 싸움을 벌이고 있지만, 그만큼 급해진 것으로도 볼 수 있겠죠.
뜻밖의 반도건설의 등장이 도리어 가족간 분쟁을 봉합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옵니다. KCGI가 반도건설 등 외부세력과 손을 잡아 버리면 가족들이 어쩔 수 없이 다시 뭉쳐 경영권을 위협하는 외부세력과 맞설 것이라는 전망이죠.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KCGI는 줄곧 총수 일가의 ‘갑질 사태’를 비판해온 만큼 조 전 부사장과 합칠 명분이 없다”면서 “상대적으로 조 회장이 가족간 갈등을 봉합해 외부 세력에 대응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어요. 서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외부세력에게 경영권을 빼앗기면 가족 모두가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닥쳐오고 있는 것이죠.
◇반도건설! 네 마음 속에 누가 있니?
끝까지 갈등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어떨까요? 조 회장을 제외한 다른 가족들이 반도건설과 손을 잡는다면요? 조 전 부사장과 조 전무, 이 고문(5.31%)의 지분율을 합치면 18.27%에 달합니다. 반도건설이 이들과 같은 편에 선다면 지분율은 26.55%까지 올라요. 조 회장의 우호세력으로 분류되는 델타항공, 특수 관계인 등의 지분 모두 합쳐도 20.67%밖엔 안 되니, 이 경우 조 회장이 불리해지겠죠.
반도건설은 아직 어느 편을 들지, 정해진 것이 없다는 입장입니다. 당초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이 조양호 전 회장과 친분이 있어 조 회장 편에 설 것이란 추측이 많았는데요. 최근 반도건설이 조 전 부사장 측과 만났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판단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일부에선 권 회장이 양쪽을 저울질 하며 이득을 따져볼 것이란 추측도 나와요.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반도건설은 처음 매입 단계부터 경쟁 구도를 어느 정도 파악하고 두 세력 중 한 쪽 손을 들어주기 위해 들어왔을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며 “조 전 부사장 측 우호 세력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총수 일가와의 친분 관계를 잘 모르니 두고 봐야 알 것”이라고 했어요. 반도건설은 양측의 애간장을 태우며 몸값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상황인 것이죠.
◇조씨 일가, 닭 쫓던 개 신세 될 수 있다고?
반도건설이 총수 일가가 아닌 외부세력과 손을 잡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KCGI, 국민연금(4.11%) 등과 함께 하면 지분율 29.68%로 총수 일가의 지분율을 넘어서게 되죠. 반도건설 입장에선 조 회장, 조 전 부사장, KCGI 중 어느 쪽과 손 잡아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겁니다.
KCGI는 지난해 이사회에서 사외이사 추천을 시도하고, 한진그룹의 재무구조 개선을 요구하는 등 조 회장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어요.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명분을 내세운 만큼 총수 일가와 손을 잡기보다는 또 다른 선택을 통해 영향력을 키우려 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죠.
여기에 국민연금도 최근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을 의결해 이번 주총에서 경영권 분쟁을 놓고 목소리를 높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민연금은 지난해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도 조양호 전 회장의 이사직 연임을 반대하기까지 했죠.
다만 외부세력 연합 가능성은 낮을 것이란 시각도 있어요. 최 연구원은 “KCGI에 가장 최선의 안은 조 회장이 기업지배구조 개선 요구에 부합하는 전략을 들고 나오는 것”이라며 “경영권을 뺏겠다는 방향은 아니기 때문에 외부세력과의 연합 가능성은 그 다음 선택지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계열사 쪼개기 작전으로 맞선다?
호텔 부문 등 계열분리 가능성은 어떨까요? 이미 비슷한 사례가 있었죠. 2002년 고(故)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자가 별세한 후 조양호ㆍ조남호ㆍ조수호ㆍ조정호 형제는 오랫동안 경영권 다툼을 벌였는데요. 그 결과 각각 항공(조양호), 중공업(조남호), 해운(조수호), 금융(조정호) 부문을 나눠 가졌어요.
그러나 계열분리의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이 우세합니다. 한진그룹은 지주사 체제를 갖추고 있어 계열분리를 하려면 방식도 복잡하고 엄청난 비용을 부담해야 하거든요.
조 회장과 조 전 부사장 중 누가 경영권을 잡게 될지, 총수 일가의 경영권 분쟁은 여전히 안개 속입니다. 결국 반도건설이 캐스팅보트를 어느 쪽으로 던질 지에 따라 양측의 승률이 달라질 텐데요. 지분이 절실한 조 회장 입장에선 고민거리가 하나 더 늘어난 셈이네요.
사실 조씨 일가가 이렇듯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똘똘 뭉쳐도 모자랄 판에 가족끼리 서로 욕심을 내면서 사이가 틀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겠죠. 더구나 그 가족은 국민들로부터 국가대표 급 ‘갑질 가족’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터라 제 아무리 ‘국적기 항공사’라 할지라도 응원해 주는 여론은 거의 없지 않습니까. 자업자득(自業自得)인 셈이죠.
☞여기서 잠깐
한진그룹 오너 일가 갑질 논란은 무엇?
조현아 전 부사장은 2014년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큰 타격을 입고 일선에서 물러났는데요. 당시 이륙 준비 중이던 기내에서 땅콩 제공 서비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난동을 부리고, 비행기를 되돌려 수석 승무원을 내리게 한 사건이에요.
조 전 부사장은 3년 뒤 칼호텔네트워크 사장으로 복귀했는데요. 보름 만에 동생인 조현민 전무가 광고대행사 팀장에게 물컵을 집어 던지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동생과 함께 다시 한번 모든 직책을 내려놨어요.
지난해에는 이혼소송 중인 남편과 아이들을 폭행한 혐의로 고소당해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죠. 조 전 부사장이 부인하면서 현재까지 양측의 진흙탕 싸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일련의 사건들로 조 전 부사장은 조직 안팎으로 신뢰를 잃고 입지가 축소됐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인 조양호 전 회장이 별세하면서 그룹 내 지분을 확보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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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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