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미국 정부가 지정하는 ‘환율 관찰대상국’ 명단에 그대로 머물게 됐다. 지난해 무역흑자 규모가 미국이 내세운 기준치를 넘어선 것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미국 재무부는 13일(현지시간) 발표한 ‘주요 교역국의 거시경제 및 환율정책 보고서’에서 지난해 8월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중국을 관찰대상국으로 재분류하고, 한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환율 관찰대상국에 포함됐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은 2016년 상반기에 최초로 관찰대상국에 지정된 후 5년째 지위를 유지하게 됐다.
미국의 관찰대상국 판단 기준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경상수지 흑자 △대미 무역흑자 △외화 순매수 규모 등 세 가지다. 이 중 3개에 모두 해당되면 ‘심층분석대상국(환율조작국)’, 2개 이하면 ‘관찰대상국’이 된다. 대미 교역액이 400억달러 이상인 20개국이 대상이며 평가 기간은 2018년 7월부터 2019년 6월까지다.
당초 한국은 이번 보고서에서는 관찰대상국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졌다. 지난해 5월 발표한 환율보고서에서 GDP 대비 경상흑자(4.4%)만 기준(2.0%)을 초과하고, 다른 평가 항목은 기준치 이하를 유지한 관찰 대상국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이에 미 재무부는 “다음 보고서에서도 1개 항목만 충족할 경우 관찰대상국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새로운 변수가 등장했다. 환율보고서 분석기간 중 대미 무역흑자 규모가 203억달러를 기록하면서 기준치(200억달러)를 넘어선 것이다. GDP 경상 흑자 역시 4.0%를 기록해 기준치를 초과한 상태를 유지했다. 세 가지 중 두개가 기준치에 충족되면서 관찰대상국 제외 기회가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이다.
환율 관찰대상국에 지정됐다 하더라도 미국이 우리 정부의 환율정책에 실질적인 제약을 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국제 금융시장에서 ‘환율 조작 가능성이 있는 나라’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의 환율 관찰대상국은 한국을 포함해 △중국 △일본 △독일 △아일랜드 △베트남 △이탈리아 △말레이시아 △스위스 △싱가포르 등 총 10개국이다. 이 중 스위스는 새로 관찰대상국에 편입됐다.
미 재무부는 우리 정부가 지난해 3분기부터 외환 시장 개입 정보를 매 분기마다 공개하는 등 외환 정책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경기둔화 대응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재정 운용이 필요하다고 제언했으며, 올해 총 지출 9.1%를 늘리는 예산도 바람직하다고 봤다.
시장에서는 환율 관찰대상국 지위가 유지된 것은 부정적인 소식이지만, 미국 정부가 중국을 환율조작국에서 제외한 것은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실장은 “미국이 중국을 환율조작국에서 해제했다는 것은, 미중 무역전쟁 타결 가능성도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라며 “무역갈등으로 짓눌려 있던 세계 무역이 회복되면 반도체 등의 수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박세인 기자 sa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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