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사회, 신음하는 지구촌] 민원정 칠레 가톨릭대 교수 인터뷰

“식모 의상을 마트에서 버젓이 파는 곳이 칠레… 계급사회 불만 폭발”

민원정 칠레 카톨릭대학교 역사학과 교수

“칠레 시위는 단순히 지하철 요금 30페소(한화 약 50원) 인상 때문도, 신자유주의 도입 30년 동안의 병폐 때문도 아닙니다.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뒤 200여년 동안 쌓인 계급 문제가 양극화라는 기폭제를 통해 터진 것입니다.”

칠레 최고 사학 중 하나인 카톨릭대(UC) 역사학과 민원정(52ㆍ사진) 교수는 지난해 11월 20일 기자와 만나 당시 한창이던 칠레 시위의 근원을 이렇게 진단했다. 법적으로는 용인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수백년을 이어온 ‘계급 사회’에 대한 쌓이고 쌓인 분노가 지하철 요금 인상이라는 사건이 방아쇠로 작용해 폭발했다는 얘기다. 칠레에서의 빈부 격차는 계급의 다른 말이며, 전혀 다른 두 개의 사회ㆍ국가가 존재한다는 게 그가 십수년 겪은 칠레의 모습이다.

민 교수는 “칠레 중고교 역사ㆍ사회 교과서를 보면 역사의 시작이 유럽부터”라며 “칠레 중상위층 백인들은 자신들을 유럽인으로 믿고 있으며, 라틴 아메리칸(남미인)이라고 말하길 굉장히 주저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구의 대다수인 하위층은 자신들이 대를 이어 가며 청소원, 가정부, 관리인 등에 머물러 사는 걸 숙명처럼 받아들여 왔다”며 “마트에서 식모 의상을 버젓이 판매하는 나라인데, 지도층이 시위하는 국민들을 이해나 하겠나”라고 반문했다.

계급사회에서 최상위 층은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를 지배하면서 그들만의 리그를 위해 교묘한 장치들을 사회 곳곳에 심어놨다고 민 교수는 강조했다. 교육과 의료가 대표적이다. 칠레 순수 사립학교는 소수 상류층 자녀만 다닐 수 있는 ‘엘리트 사립학교’다. 한번 들어가면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쭉 다니는데, 학비가 월 70만페소(한화 약 105만원) 수준이다. 최저임금이 30만1,000페소이고 노동자 절반 가량이 월 40만페소 이하를 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다수 국민들은 자녀를 사립학교에 보낼 엄두를 못 낸다. 돈이 있어도 끼워주지 않는 장치도 마련해뒀다. 민 교수는 “부모가 이 학교 출신이거나, 형제가 지금 다니고 있어야 우선 입학하는 등 다른 계층이 진입하기는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다”며 “해외 유명 레스토랑에 대해서는 줄줄 외면서도 산티아고의 (시위가 한창인) 이탈리아 광장이나 서민층이 사는 곳에 가보지 않은 상류층 자제들이 허다하다”고 말했다.

목숨이 달린 의료는 더욱 계급차별이 심한 분야다. 칠레 의료보험은 국가보험인 포나사(FONASA)와 민영보험인 이사프레(ISAPRE)로 이원화 돼있다. 다시 이사프레는 보험료에 따라 보장 범위와 갈 수 있는 병원의 종류가 달라진다. 민 교수는 “국민 10명 중 7명이 포나사 가입에 머물고 있는데, 환경이 열악한데다 의료기기마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칠레에선 ‘포나사는 기다리다 죽는다’는 말과 다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민 교수를 만날 당시 칠레 시위는 과격해지고 있었다. 과격 시위가 장기화하면서 피녜라 정부는 요금 인상 철회와 함께 개헌과 최저임금 인상, 국회의원 연봉 삭감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 그러나 성난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민 교수는 “피노체트 독재를 경험하지 않은 젊은이들은 평등과 권리에 대한 정보는 많지만, 가진 것이 없다”며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상황에서 형편이 더 어려워지니 악에 받친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약자가 약자를 어렵게 만드는 현재의 시위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지하철 요금 인상 철회는 2020년까지 유보일 뿐이고 헌법 개정도 찬반을 거쳐야 하니 개정된다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한달 넘는 시위에서 시민들이 얻은 것은 전무합니다. 과격 시위로 가게를 못 여는, 일을 하지 못하는 서민들이 더 큰 타격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상류층은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죠. 상류층이 지금의 시위를 조금 불편할 뿐 우습다고 보는 이유입니다.”

산티아고=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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