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과 공모 등 증거부족 판단… 양승태 관련 재판 영향 주목
법원이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 연루로 기소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 관련한 법원의 첫 판단으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 관련 재판에 미칠 영향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8부(부장 박남천)는 13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6개 혐의로 기소된 유 전 연구관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유 전 연구관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해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 재판 정보를 유출한 혐의(직권남용ㆍ공무상 비밀누설)에 대해 ‘증거 부족’을 이유로 무죄라고 판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진료인’ 김영재 측의 특허분쟁소송 등 ‘청와대 관심 재판’ 관련 문건 작성을 지시해 임 전 차장에게 보고한 공모관계가 입증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유 전 연구관이 판사직을 관두면서 대법원 재판연구관 검토보고서를 갖고 나온 혐의(개인정보보호법과 공공기록물관리법 위반과 절도)와 대법원 심리 사건을 퇴직 뒤 변호사로 수임한 혐의(변호사법 위반)도 증거부족과 검토보고서는 공공기록물이 아니라는 법리 판단 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유 전 연구관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나오면서 양 전 대법관을 비롯한 향후 관련 재판의 향배도 주목된다. 일단 사법농단 의혹 ‘키맨’인 임종헌 전 차장의 재판 가운데 유 전 연구관이 연루된 청와대 문건보고 혐의에 대해서는 이날 재판부의 무죄 판단이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또한 재판부는 이날 이례적으로 검찰의 수사방식과 관련해 폭넓은 판단을 내렸다. 피고인이 피의사실 공표 등을 문제삼아 “검찰이 총체적 위법수사를 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모두 기각했다.
앞서 유 전 연구관은 재판 내내 검찰 수사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피의사실공표, 포토라인이나 공개소환에 의한 인격권 침해, 별건 압수수색 등으로 위법한 수사를 벌였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결심공판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피의사실 공표를 통한 여론몰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의 수사과정이 전반적으로 위법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우선 피의사실공표와 관련해 “수사기관이 언론에게 알려준 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무상비밀누설을 범하였다고 특정할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 내용을 공표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포토라인 설치ㆍ공개소환에 대해서도 “포토라인은 국민의 알권리를 실행하고 취재원 인격보호를 위해 언론이 합의에 따라 자율적으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며 포토라인 설치에 수사기관이 개입하지 않은 점에 비춰볼 때 공개소환도 위법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재판부의 지적에 따라 다른 재판과 사건에서 쟁점이 된 검찰 수사 방식도 영향을 받을지 주목된다. 일단 피의사실 공표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일가 비리 수사에서 이슈가 된 상황이다. 포토라인과 공개소환도 지난해 조 전 장관 일가 수사 당시 검찰이 인권 보장을 이유로 폐지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국민의 알권리 보장’ 차원에서 어느 정도 용인한 판단이 나오면서 검찰 방침에 변화가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한편 검찰은 이날 “충분한 증거에도 불구하고 ‘관행이나 범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며 항소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윤주영 기자 roz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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