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세상 만들어 다오’라고 외치며 죽어간 친구, 선배, 후배, 형들에게 이 아버지 말 전해다오. 모두들 걱정 말라고. ‘우리 아버지까지 민주(화)운동 자신 있다고 하는데 걱정 말라’고, 그 영혼들에게 열심히 달래 다오.”
1987년 1월 14일 고(故) 박종철 열사가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다 숨진 후 아버지 고 박정기씨는 연필을 들었다. 억울하게 죽은 아들의 뒤를 이어 민주화 운동을 하며 느낀 감정, 막내아들을 향한 사무침을 어떻게든 남겨야 했다. 그렇게 꼬박 20년간 일기를 썼다. 이듬해 부산대에서 열린 아들의 1주기 추모제에서 박씨가 전한 추도사도 일기장에 고스란히 담겼다.
일기에서 박씨는 6월 민주항쟁의 기폭제가 된 아들을 대신한 ‘민주화 투사’이자 아들을 그리는 평범한 아버지였다. 그는 “이제는 우리 국민이 자신이 선 것 같다. 아버지 같은 사람이, 온 국민이, 온 세계가 아시다시피 민중이 민주화돼 사람 사는 세상이 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민주화 소식을 전하다가도, 이내 “어머니, 누나는 서울 형님, 형수 집에 있고 아버지 혼자 한없는 감홰(감회) 톳보기(안경) 속으로 눈물을 닦고 닦았으나 그대로 지면이 다 젖었구나”라고 적었다. 추도 일기는 “잘가라. 잘 있그라. 철아…”라고 끝을 맺었다.
박씨는 1987년부터 노환으로 별세한 2018년까지 30여년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민주화 운동사의 주요 현장을 지켰다. 일기는 그 중 2006년 8월까지 20년간 계속됐다.
박씨의 일기장은 박종철 열사 33주기(14일)를 맞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사업회)가 13일 공개했다. 그가 자서전 집필을 위해 작성한 회고담을 포함해 총 14권 분량이다. 사업회와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가 함께 음표기 작업을 통해 문서화한 일기장 원본은 민주화 운동사(史)의 중요한 자료로 재탄생했다. 사업회는 “6월 민주항쟁 이후 20년의 역사를 박정기 선생의 눈을 통해 볼 수 있는 귀중한 사료”라고 밝혔다.
박씨 일기장 원본은 사업회가 운영하는 디지털 아카이브 사이트 ‘오픈아카이브’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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