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프랑스 사이의 ‘세금 전쟁’이 제대로 불 붙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관세 폭탄’ 협박에도 프랑스가 미국의 거대 정보기술(IT) 기업들을 겨냥한 ‘디지털세’ 부과를 강행하기로 결정한 것. 디지털세는 유럽 전역으로 번질 조짐이어서 미-유럽 간 무역전쟁 불씨로 확고하게 자리잡는 분위기다.
세드리크 오 프랑스 디지털 담당 국무장관은 12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디지털세 부과를 철회하지 않겠다. 그건 확실하다”고 단언했다. 그는 ‘빙산의 일각’이란 표현까지 써 가며 디지털세는 물러설 수 없는 규제임을 분명히 했다.
표적은 IT 공룡 4인방인 이른바 ‘GAFA’. 구글(G) 아마존(A) 페이스북(F) 애플(A)을 일컫는 말로 모두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다. 오 장관은 “이들 업체는 경제적으로 독점적 위치에 있다”며 “14억명이 이용하는 기업을 다른 회사와 동일하게 대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발언은 양측이 ‘휴전’을 선언한 상황에서 터져 나와 더욱 의미심장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7월 프랑스 의회가 자국에서 연간 2,500만유로(약 321억7,675원) 넘는 수익을 올리는 IT 기업을 대상으로 매출액의 3%를 세금으로 물리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프랑스산 치즈, 와인등 24억달러어치 물품에 100%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양측의 기싸움이 고조되면서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과 브루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주 통화에서 타협 노력을 약속했다. 다음 회의 전까지 협상안을 들고 오자는 합의도 했다. 때문에 오 장관의 돌연한 공세는 미국의 양보를 강하게 촉구하는 메시지로 읽힌다. 그는 한 술 더 떠 “거대 기업의 데이터 축적을 제한하는 등의 추가 제재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며 GAFA세 부과 의지를 드러냈다. 르메르 장관도 “미국이 다시 보복하면 논의는 끝”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은 두 나라의 디지털 전쟁 결과를 주시하고 있다. 프랑스에 이어 이탈리아도 1일부터 디지털세 시행에 들어갔고, 영국 역시 4월 제도 적용을 앞두고 있다. 독일, 스페인 등도 ‘공정과세’를 이유로 관련 법안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익이 있으면 세금을 낸다’는 조세원칙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공은 다시 미국으로 넘어갔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프랑스의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의 무역보복은 불가피하다”면서 “양측의 세금전쟁이 미국 대 유럽연합(EU)으로까지 전선을 확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손성원 기자 sohns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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