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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규모 34조 눈덩이… 금융사ㆍ투자자ㆍ당국 ‘안전은 뒷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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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 규모 34조 눈덩이… 금융사ㆍ투자자ㆍ당국 ‘안전은 뒷전’

입력
2020.01.14 04:40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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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 등 “걱정 말라” 실적 급급… DLFㆍ라임 대규모 손실 불러 

국내 헤지펀드 설정액 추이. 그래픽=박구원 기자
국내 헤지펀드 설정액 추이. 그래픽=박구원 기자

지난해부터 잇따르는 ‘사모펀드 손실 사태’가 한국 금융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흔히 금융의 근간은 ‘신뢰’라고 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금융사와 소비자, 소비자와 금융당국, 금융당국과 금융사 간의 신뢰는 모두 깨졌다.

어리숙한 소비자를 상대로 속임수를 일삼는 금융사, 계약에 서명을 하고도 손실이 나면 일단 물어내라고 우기는 소비자, 감독의 책임은 감춘 채 여론만 눈치보는 금융당국 모두 천박한 민낯을 드러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금융의 근본인 신뢰를 제대로 갖출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은행에서 팔린 헤지펀드 

최근 논란이 되는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자산운용 사태’의 중심에 있는 사모펀드는 모두 ‘헤지펀드’다. 헤지펀드는 49명 이하 고객에게 돈을 모아 주식ㆍ채권ㆍ파생상품ㆍ부동산ㆍ원자재 등에 투자한다. 고수익을 추구하지만, 반대로 원금 100% 손실도 가능하다.

해외금리 연계형 DLF는 독일ㆍ영국 등 선진국 금리를 기초자산 삼아 금리가 마이너스(-)만 아니면 약정수익을 주는 구조의 헤지펀드였다. 그런데 세계적인 금융불안에 해당 금리가 마이너스가 되면서 투자원금의 40~100% 손실이 발생했다.

라임은 코스닥 기업의 채권ㆍ전환사채(CB), 해외무역펀드 등에 투자하는 헤지펀드를 운용했다. 하지만 기업과 펀드에서 손실이 나면서 투자금 8,500억원이 환매 중단됐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최대 70% 손실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애초 이런 상품은 ‘고수익을 노리면서 손실을 감수할 준비가 된 투자자’에게만 파는 게 맞다. 애초 국내 헤지펀드도 그런 취지로 허용됐다. 하지만 이들 상품은 시중은행 창구에서 일반 투자자에게까지 버젓이 팔렸다. DLF를 판 은행은 난청에 치매까지 앓던 79세 노인에게 “걱정 말라”고 속삭였다. 라임 상품도 “예금만큼 안전하다”는 식으로 팔렸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이는 헤지펀드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상대적으로 규제와 판매절차가 엄격한 ‘공모펀드’와의 경계가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최근 4년 사이 헤지펀드 규모는 10배나 늘어 34조원에 이르렀다. 그러자 금융사들은 49명까지만 투자자를 모집할 수 있는 헤지펀드를 같은 구조로 계속 복제했다.

자산운용사ㆍ증권사ㆍ은행이 의기투합해 투자자를 모집했다. 투자 규모가 클수록 좋은 공모펀드처럼 계속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투자 영업을 한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수익을 위해 사실상 같은 구조의 헤지펀드 상품을 계속 만들어내 불특정 다수에게 영업하면 엄격한 투자성향 선별 같은 작업은 뒷전으로 밀린다”고 고백했다.

 ◇사모펀드 사태가 던지는 질문들 

사모펀드 사태는 우리 사회에 금융의 근본 전제들을 되묻게 한다. 우선 금융사 실적추구의 경계에 대해서다. 수익과 손실이 미래 가능성의 영역에 있는 상황에서, 고객보다 월등한 정보와 전문성이 있는 금융사가 달콤한 말로 어느 선까지 고객을 설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은 최근 DLF 사태 배상 권고안을 결정하면서 은행의 과도한 수익 추구에 대한 책임을 반영하기도 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사와 고객 사이 신뢰는 단순히 손실 여부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며 “손실이 날 수 있는 헤지펀드라면 관련 정보를 고객에게 정확히 제공하고 상품의 위험을 설명해야 하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고객에게 투자를 제안하는 것이 신뢰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지키는 금융사가 많지 않다”고 말했다.

상품 계약의 한 당사자인 소비자의 책임도 질문 대상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이번 DLF 피해자 가운데는 앞서 수차례 유사한 상품으로 이득을 본, 즉 상품 내용을 잘 아는 투자자가 적지 않지만 이들 역시도 최근의 피해 보상 분위기에 편승하고 있다.

대규모 손실 사태 때마다 ‘손실은 곧 배상 대상’이라는 인식이 지배하는 건, 금융산업 발전에도 지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손실마다 배상을 요구한다면 금융사 또한 ‘책임 있는 소비자’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다양한 상품을 개발할 수 없을 것”이고 말했다.

금융당국에 대한 의문도 빠지지 않는다. 금융권 관계자는 “헤지펀드 최소 투자액을 2015년 5억원에서 1억원으로 대폭 낮춰 투자확대를 유도한 게 금융당국”이라며 “그 이후 당국이 제대로 감독에 나섰는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징계, 판매금지로만 해결될까 

금융당국은 잇따르는 사모펀드 손실 사태에 맞서 △관련 금융사와 임직원을 징계하고 △은행의 ‘고위험상품’ 판매를 어렵게 하는 등의 판매제한 조치로 대응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당국이 사모펀드 육성 목적에 매몰돼 불완전판매 리스크는 관리하지 않은 결과”라며 “고위험상품이라면 철저히 전문 증권사에서만 판매하게 하는 등의 엄격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럴 경우, 자칫 금융산업 자체를 위축시키는 ‘교각살우’의 부작용도 우려된다. 이에 아예 시장을 막기보다는, 손실에 대한 금융사의 책임을 강화해 업계 자율적인 리스크 관리를 유도해야 한다는 제안도 적지 않다.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우선 고위험상품에 대한 정의를 좀 더 보수적으로 내릴 필요가 있다”며 “징벌적보상제 등 판매사에 책임을 엄격하게 지우는 대책 마련도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자자 역시 최소한의 자기보호 능력을 갖추도록 당국이 투자관련 교육에도 내실을 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조아름 기자 archo1206@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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