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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 안 맞는 비례대표제… 90%가 40~6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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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 안 맞는 비례대표제… 90%가 40~60대

입력
2020.01.13 04:40
수정
2020.01.13 09:14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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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20대 의원 211명 전수조사] 

 19.4%가 정치인, 그 중 의원 출신 12명… 중진들 다선 보장수단으로 전락 

 탈북자ㆍ이주민 등 명맥 끊기기도… ‘직능ㆍ세대ㆍ계층 대표’ 취지 무색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희상 국회의장이 지난달 27일 국회 본회의에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가결하고 있다. 연합뉴스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지역구 초선의원. 그래픽=송정근 기자
비례대표 국회의원과 지역구 초선의원. 그래픽=송정근 기자

2004년 도입된 국회의원 비례대표제가 ‘다양한 계층ㆍ직능ㆍ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도입 취지에 걸맞지 않게 운영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특정 연령대와 직군에 대한 과도한 쏠림으로 ‘5060세대ㆍ부유층ㆍ명망가’로 요약되는 국회 구성을 다양화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기성 정치인의 정치 생명 연장을 위한 통로로 변질되기도 한 것으로 조사됐다.

12일 본보가 현행 비례대표제(지역구 투표와 정당 투표를 분리하는 1인 2표제)가 도입된 2004년 17대 총선부터 2016년 20대 총선까지의 비례대표 당선자(총선 당일 기준) 211명을 전수 조사한 결과 이 같이 드러났다. 211명 중 가장 비율이 높은 직군은 정치인(정당인)으로, 19.4%(41명)에 달했다. 오랜 기간 정치 경험을 쌓은 정당 사무처 당직자나 기초자치단체 출신 인사들이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치인’으로 분류된 적지 않은 인사들이 대선 캠프 혹은 특정 계파에서 활동한 공적을 인정 받아 논공행상 형 공천을 받았다는 것이다. 재정적ㆍ정치적 자원이 부족한 사람들에게 입법부 진출 기회를 열어 준다는 비례대표 취지와 어긋나는 결과다.

정치인 출신 비례대표 비율은 17대 국회에서 17.9%(10명), 18대에서 25.9%(14명), 19대 13%(7명), 20대 21.2%(10명)으로 나타났다. 이 중 국회의원 출신이 12명이나 됐고, 특히 다선 의원 출신이 많았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대와 20대 총선에서 거푸 비례대표가 돼 5선에 올랐다. 18대 국회에선 6선의 조순형 자유선진당 의원, 5선의 서청원 친박연대 의원이 비례대표로 원내에 다시 진출했다. 19대 총선 때는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었던 박근혜(4선) 전 대통령과 민주통합당 대표인 한명숙(재선) 전 국무총리가 총선 진두지휘를 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당선됐다.

비례대표 연령비율. 그래픽=송정근 기자
비례대표 연령비율. 그래픽=송정근 기자

비례대표가 특정 연령대와 직군에 치중되는 현상도 심했다. 비례대표 당선자 211명 중 90% 이상이 40~60대에 몰린 것으로 조사됐다. 청년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20대 비례대표는 20대 국회 들어서야 처음 배출됐다. 29세 때 당선된 김수민 국민의당 의원이 주인공이다. 17대 때는 30대가 전무했고 △18대 1명 △19대 5명 △20대 1명이었지만 모두 재선에 실패해 국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 노년층도 홀대 받았다. 70대 이상 비례대표는 18대와 20대 국회에 1명씩에 불과했다.

학계와 전문가 출신 비례대표(14.7%ㆍ31명)도 상대적으로 약진했지만, 경제와 법학 등 이른바 ‘기득권 학문 분야’에 몰렸다. 체육계 출신은 탁구 선수 출신인 이에리사(새누리당ㆍ19대), 바둑기사 출신인 조훈현(자유한국당ㆍ20대) 의원 정도였다. 노동계 출신의 비례대표 진출은 꾸준했으나,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간부들 몫인 경우가 태반이었다.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불리는 이공계 출신은 18대에서 1명에 불과했고, 17~20대까지 전체의 10%를 넘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시민사회단체 출신의 경우 17대 국회에선 여성단체 출신들이 약진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참여연대, 바른사회시민회의 등 기성 정당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는 단체 출신의 영입이 잦아졌다. 임성학 서울시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일부 시민단체들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리며 ‘정치 등용문’ 역할을 하다 보니 시민단체의 순수성이 퇴색된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장애인과 농업인, 탈북자, 이주민 등 소수자들도 비례대표로 진출했지만, 깜짝 흥행용인 경우가 많았다. 17대 국회에서 장향숙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이 장애인 최초의 비례대표 의원이 된 이후 18, 19대에선 장애인 비례대표가 나왔다. 20대 국회에선 전무했다. 탈북자, 이주민 출신은 19대 총선에서 조명철, 이자스민 의원을 새누리당이 영입한 이후 맥이 끊겼다. 농업 분야 대표도 별로 영입되지 않았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교수는 “장애인, 청년 등 소수자 집단이 국회와의 채널을 유지하려면 이 분야 비례대표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는 게 중요하다”며 “지속성이 끊어지면 유권자의 관심을 받기 어렵고 입법 등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서 교수는 또 “소수자라고 하면 장애인, 이주민 등만 생각하는데 고령 치매 환자를 둔 가족, 보육에 어려움을 겪는 학부모 등을 원내에 진출시켜 현장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승임 기자 choni@hankookilbo.com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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