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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윤봉길의 수통 폭탄… 레고로 재현된 100년 전 독립영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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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관순, 윤봉길의 수통 폭탄… 레고로 재현된 100년 전 독립영웅들

입력
2020.01.12 09:00
수정
2020.01.12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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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독립운동 주요 장면 레고로 만든 레고 사진가 이제형씨

“레고로 한복 입은 유관순 열사 만들며 어릴 적 배운 독립운동가들 떠올렸죠”

유관순 열사와 3ㆍ1 운동 당시의 모습을 레고로 재현했다. 이제형씨 제공
유관순 열사와 3ㆍ1 운동 당시의 모습을 레고로 재현했다. 이제형씨 제공

태극기를 든 유관순 열사가 아우내 장터에서 사람들과 만세를 외친다. 총칼을 든 일본군들이 무서운 얼굴로 유관순 열사와 사람들을 노려본다. 결연한 표정으로 일본군과 맞서는 사람들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작은 몸집을 가졌다. 이 사람들은 모두 유명 장난감인 레고의 피규어다.

5cm도 되지 않는 조그마한 크기지만 여러 번 손이 닿아야 한복을 입은 레고 피규어가 탄생한다. 딱딱한 레고의 몸체 위에 찰흙 같은 에폭시 퍼티로 옷을 조각하고, 검은색과 흰색 물감을 칠한 끝에야 인물 한 명이 되살아난다. 레고 사진가 이제형(46)씨가 ‘레고 독립운동’ 한 장면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은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 달. 장면마다 그의 손을 거친 수십 개의 피규어가 눈에 띈다.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윤봉길 의사 홍커우 의거 등 독립운동사의 한 획을 그은 사건들이 레고로 탄생했다. 이씨가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을 기념해 기획한 ‘레고 독립운동 프로젝트’를 통해서 말이다.

3ㆍ1운동 뜻 모르는 아이들 위해 독립운동 프로젝트 시작

10년 넘게 취미로 레고 사진을 찍어왔다는 레고 사진가 이제형씨. 이제형씨 제공
10년 넘게 취미로 레고 사진을 찍어왔다는 레고 사진가 이제형씨. 이제형씨 제공

교량 설계사가 본업인 그는 아이들과 놀아주기 위해 레고를 시작했고 10년 전부터는 취미로 영화, 드라마 혹은 특별한 장면을 레고로 조립한 뒤 사진을 찍어왔다. 그는 영화 ‘스타워즈’ 레고를 촬영한 사진으로 마니아 층으로부터 큰 인기를 얻었다. 이씨는 2018년 문재인 정부 출범 1주년 기념 사진전인 ‘다시, 봄’에 참여해 문 정부의 1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12장면을 레고로 조립한 뒤 사진에 담으며 대중에게도 이름을 알렸다.

그러던 이씨는 5번째 개인 전시회를 마친 그 해 11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레고 독립운동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그는 “3ㆍ1운동을 삼점일 운동이라고 읽는 아이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됐다”며 “남녀노소 모두가 친근하게 여기는 레고로 독립운동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조명하 의사부터 권기옥 지사까지 잘 드러나지 않았던 독립운동가 조명해

첫 시작은 3ㆍ1운동이었다. 유관순 열사와 만세를 외치는 당시 국민을 레고로 표현했다. 특히 정품 레고에는 한복이 없기에 한복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씨는 몸짓이 비슷한 레고에 에폭시 퍼티를 덧붙여 1919년 한복의 모습을 나타냈다.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인 권기옥 지사가 태극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레고로 만들었다. 이제형씨 제공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인 권기옥 지사가 태극기를 들고 있는 모습을 레고로 만들었다. 이제형씨 제공

프로젝트에는 유명한 사건뿐 아니라 잘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와 그들의 활약상도 등장했다. 대만에서 일본 천왕의 장인을 처단한 조명하 의사, 한국 최초의 여성 비행사이자 조선총독부 폭격을 계획한 권기옥 지사, 충정공 민영환 열사 등 우리의 관심 밖에 머물던 독립운동가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조명됐다. ‘상상력을 발휘해 창작과 재조립을 하며 노는 장난감’이라는 레고의 모토에 걸맞게 기존 제품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한국 독립운동사가 재현될 수 있었다.

과거의 독립운동은 물론 현재 독립운동의 상징이 된 ‘평화의 소녀상’도 프로젝트에 포함됐다. 그는 평화의 소녀상을 프로젝트 초기에는 기획하지 않았으나 지난해 8월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 기획전인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의 사실상 강제 조치로 전시 중단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평화의 소녀상을 레고로 만들어 전 세계에 일본군 위안부 문제와 소녀상을 알려보기로 마음먹었고, 제작했다.

국내에 없는 부품 받아보기까지 한 달이 걸리기도

봉오동 전투를 이끄는 홍범도 장군의 모습을 레고로 표현했다. 이제형씨 제공
봉오동 전투를 이끄는 홍범도 장군의 모습을 레고로 표현했다. 이제형씨 제공

누구도 해보지 않은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구성부터 제작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특히 기존 제품 중에서는 찾을 수 없는 것들이 많아 의복부터 배경까지 직접 만들었다. 홍범도 장군의 레고는 러시아식 군복부터 총집, 귀마개를 올린 모자까지 조각하고 색칠하는 데 꼬박 24시간이 걸렸다. 국내에 없는 부품은 해외의 레고 사이트와 레고 전문 온라인 장터에서 주문해 제품을 받기까지 3~4주가 걸리기도 했다. 레고의 팔다리가 짧은 탓에 포즈를 표현하기도 쉽지 않았다. 쌍권총을 든 김상옥 의사의 경우, 펄럭이는 코트를 연출해 역동성을 살렸다.

순간을 포착해야 하는 사진이기에 한 컷을 찍는 데 수십 번의 시도를 하기도 했다.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는 배경의 연기를 CG가 아닌 드라이아이스로 직접 표현했다. 그는 “드라이아이스가 원하는 대로 생겨나지 않아 수십 컷을 찍고 그 중 마음에 드는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고 전했다.

윤봉길 의사가 수통 폭탄을 던진 홍커우 의거를 표현한 레고. 이제형씨 제공
윤봉길 의사가 수통 폭탄을 던진 홍커우 의거를 표현한 레고. 이제형씨 제공

그는 인터넷에서 모을 수 있는 모든 정보를 끌어모아 사건을 상징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장면을 구상했다. 임시정부 수립 당시 사진도 구성과 배경을 그대로 살리고, 윤봉길 의사의 홍커우 의거도 조사를 통해 도시락 폭탄이 아닌 수통 폭탄임을 알고 작품에 반영했다. 때로는 사건의 상징성을 살리기 위해 각색도 했다. 안중근 의사 하면 검은색 더블 버튼 재킷이 떠오르지만 사실 의거 당시 그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이씨의 작품에는 더블 버튼 정장을 입은 안중근 의사가 기차 앞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있다. 이씨는 “예술 표현의 영역 내에서 디테일을 살려 독립운동을 강렬하게 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판옥선 위에서 전투하는 레고 이순신 장군 만든다

‘레고 독립운동 프로젝트’는 1년여간 이씨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서 공개됐고, 지난해 9월 이육사 시인의 작품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됐다. 그의 프로젝트는 ‘국민참여 기념사업’으로 선정돼 ‘3ㆍ1운동 및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사업 위원회’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12월에는 기념사업 우수작업을 치하하는 청와대 영빈관 오찬에 초청되기도 했다. 현재 레고 독립운동 사진들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해외문화홍보원을 통해 8개 국어로 번역돼 전 세계에 독립운동을 알리고 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피해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레고 모습. 이제형씨 제공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피해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 레고 모습. 이제형씨 제공

좋은 취지의 프로젝트지만 긍정적인 반응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평화의 소녀상을 희화한 것 같다’, ‘장난감까지 정치적으로 이용해야 하냐’는 비판도 이어졌다. 그는 “독립운동이 정치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한국인이라면 아이부터 노인까지 모든 세대가 기억해야 하는 일”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씨는 프로젝트의 하나로 ‘우리 모두 독립운동가’라는 작품을 만들어 모든 국민이 독립운동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한다는 의미를 전하기도 했다. 최근 이씨는 사진으로만 남겼던 작품들을 영상으로 제작해 유튜브 채널 ‘레고 사진가의 역사적 그날’에 올리는 중이다. 레고로 구성한 장면에 음악을 넣어 역사를 보다 실감 나게 전하기 위함이다.

그는 다음 작품으로 이순신 장군을 되살릴 예정이다. ‘어벤져스’ 같은 히어로 영화를 좋아한다는 이씨는 평소 한국 영웅들이 외국 영웅만큼 주목 받지 못하는 것에 아쉬움을 느껴 왔다. 그렇기에 판옥선에 오른 이순신과 수군들의 강렬한 모습을 구상하기로 결정했다. 그는 “독립운동이 시즌 1이라면 다음에는 또 다른 역사를 레고로 만들고 싶다”며 “한국의 어벤져스를 찾고 싶다”는 목표를 밝혔다.

정해주 인턴기자 digita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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