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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곧 치료다” 이탈리아에는 정신병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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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가 곧 치료다” 이탈리아에는 정신병원이 없다

입력
2020.01.10 04:4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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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정신병원을 폐쇄한 사람’의 주인공인 이탈리아 정신의학자 프랑코 바잘리아. ©Michael Lucan 문학동네 제공
신간 ‘정신병원을 폐쇄한 사람’의 주인공인 이탈리아 정신의학자 프랑코 바잘리아. ©Michael Lucan 문학동네 제공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2019년 진주시 아파트 방화사건 등 최근 한국 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 뒤엔 ‘조현병 환자가 저지른 범죄’란 꼬리표가 붙었다. 조현병 치료를 받은 전력이 있던 가해자를 관리하지 못한 공공보건의료 시스템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거세게 들끓었지만, 한편으론 정신질환자에 대한 공포심과 혐오가 지나치다는 지적이 일었다. 가벼운 우울증과 공황장애 정도는 감기처럼 여기게 된 요즈음에도 정신질환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여전히 견고하다. 정신질환자들은 통제 불가능하며 사회로부터 격리돼야 하는 존재일까.

이탈리아의 사례는 이 같은 의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한다. 이탈리아에는 정신질환자들을 보호하는 ‘정신병원’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1990년대 후반에 완전히 사라졌다. 대신 지역 사회에 뿌리 내린 정신보건센터와 협동조합, 공공주택 등이 그 역할을 수행한다. 그 근간이 된 것이 바로 모든 정신병원을 폐쇄하게 한 ‘180호법’, 이른바 ‘바잘리아법’이다. 이 법은 무려 42년 전인 1978년에 제정됐다.

‘180호법’은 1960~70년대 정신보건 개혁의 결실이다. 그 중심에는 정신의학자 프랑코 바잘리아(1942~1980)가 있다. 1924년 베네치아에서 태어나 파도바대학에서 정신의학 박사 학위를 받은 바잘리아는 1961년 고리치아 정신질환자 보호소 소장으로 부임하면서 충격적인 현실을 목격한다. 환자들은 감금되거나 병상에 묶인 채 지냈고, 고문과 자살이 너무나 흔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사실상 감옥이나 다름없는 그곳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로지 죽음뿐이었다.

바잘리아는 뜻을 같이하는 동료들과 함께 ‘치료 공동체’를 이뤄 개혁에 나섰다. 사슬을 풀고 담장을 허물었다. 환자들은 병원 안팎을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었다. 언제 자고 일어날지 스스로 결정했다. 주점, 클럽 등 자신들을 위한 공간도 스스로 만들어 운영했다. 노동의 대가로 돈도 받았다. 인격과 존엄을 지닌 존재로 대우한 것이다.

바잘리아는 딜레마에 부닥쳤다. 보호소 내부만의 변화는 자칫 통제시설의 생명만 늘려줄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었다. 그는 자신이 나아갈 길은 보호소 자체를 폐쇄하는 것이라 확신했고, 1970년대에 트리에스테 정신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뒤 즉각 실천에 돌입했다.


 정신병원을 폐쇄한 사람 

 존 풋 지음ㆍ권루시안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640쪽ㆍ2만5,000원 

‘정신병원을 폐쇄한 사람’은 정신질환자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까지 바잘리아와 정신보건 개혁자들이 쏟았던 헌신과 노력을 기록한 책이다. 드라마틱한 그 과정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바로 “인간 해방”이다. 바잘리아가 몸담았던 트리에스테 정신병원엔 이런 구호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자유가 치료다.”

현재 이탈리아의 정신질환자들이 입원치료를 받는 기간은 평균 2주가 채 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18배나 많은 247일에 달한다. 인간을 진짜로 병들게 하는 건 억압과 통제일지 모른다. 이 책은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을 깨부술 뿐만 아니라 인간 본연의 존재 가치에 대해서도 되새기게 한다. 유럽 역사의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정신보건 개혁이 전개되는 과정도 흥미진진하지만, 숱한 자료와 증언을 그러모아 바잘리아의 삶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낸 필자의 공력에도 감탄이 나온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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