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와이스 나연이만 행복하다면…” 기내서 소란 피운 외국인 남성
JYP, 업무방해죄로 형사 고발… BTS 멤버 뷔도 괴로움 토로해

“(그룹 트와이스 멤버) 나연이 행복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내가 독일로 돌아가는 걸 원한다면 그렇게 하겠다. 단지 나연의 답을 듣고 싶을 뿐인데 소속사가 막고 있다.”
최근 독일의 한 20대 남성은 자신의 SNS 계정에 이런 내용의 글과 동영상을 올렸다. 이 남성은 지난 1일 나연이 탄 귀국 비행기에 동승한 뒤 큰 소란을 피웠다면서 트와이스의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가 ‘외국인 스토커’로 지목한 인물이다.
이 남성은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나연이를 귀찮게 할 생각은 없었으며 단지 내 사랑을 고백하고 조용히 편지를 전달한 뒤 그녀의 생각을 듣고 싶었을 뿐인데 소속사 매니저들이 달려들어 나를 공격했다”고 했다. JYP엔터테인먼트는 서울중앙지법에 접근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데 이어 이튿날엔 서울 강남경찰서에 이 남성을 업무방해죄로 형사고발했다.
연예인의 사생활을 일거수일투족 따라다니는 열성 팬이라는 뜻의 사생(私生)팬의 폐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미지 타격을 우려해 좋은 게 좋은 거란 식으로 대개는 현장에서 막는 수준으로 넘겼다. 당사자를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것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9일 연예계에 따르면 이젠 기획사들이 본격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설 분위기다. 더 이상 참기 어려운 수준으로까지 발전해서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머무는 숙소, 개인별 휴대폰, 이동하는 비행기 좌석 등 모든 정보를 샅샅이 찾아내서 졸졸 따라다닌다.
사례는 넘친다. 방탄소년단(BTS) 멤버 뷔는 지난달 팬들과 온라인 대화를 주고받다 “비행기 앞자리나 옆자리에 앉는 사람들이 있다”며 “사적인 공간에서 마음 놓고 편히 못 쉬어서 많이 불편했고 정말 무섭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수준이면 애교에 가깝다.

남장을 한 채 남성용 화장실까지 따라 들어오기도 하고, 주소를 알아내 집 앞에서 기다리는 걸 넘어서서 집 비밀번호까지 알아내려 하거나 몰래 집으로 들어가려는 경우도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의 주민등록번호를 도용해 감청용 복제폰을 만드는가 하면, 이동용 차량에다 위치추적장치를 붙여서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중 일부는 차에서 내려 직접 얼굴을 맞대고 싶다는 이유로 일부러 차 사고를 내려는 이들도 있다.
그동안은 대응을 삼갔다. 연예기획사 매니저 A씨는 “불편함이야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지만 그래도 팬이기 때문에 심각한 경우가 아니라면 어느 정도 감수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개인적 돌출행동’을 넘어 이제는 ‘상업화’됐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게 ‘홈마’다. 홈마는 연예인의 사진을 고화질 카메라로 촬영한 뒤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홈페이지 마스터’를 뜻한다. 처음에는 개인적 취미 정도였으나 이제는 이 사진을 브로마이드 형식으로 만들거나 사진을 활용한 상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전문업자 수준으로까지 진화했다. 특히 K팝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고 팬덤을 형성하면서 홈마는 하나의 개인사업이 되어버렸다.
비행기에 동승하거나 숙소 정보를 알아내 숙소 주변을 배회하는 이들도 대개는 사진 촬영이 목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대체 어떻게 개인 정보를 얻어낼까. 이 부분은 여전히 미스터리다. 가요기획사들은 하나같이 “잘 모르겠다”고 입을 모았다. 가요기획사 대표 B씨는 “항공사나 이동통신사에서 흘러갔을 수도 있고, 해커가 개인정보를 빼냈을 수도 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인지는 우리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연예인 스토킹 문제, 특히 나이 어린 여성 연예인 보호가 연예계의 화두 중 하나가 됐다.
트와이스 나연 건에 대해 소속사는 단호한 법적 대응을 선언했지만, 처벌은 경범죄 수준일 것이란 예상이 많다. 선종문 변호사는 “주거침입이나 강제추행에까지 이르지 않는다면 범칙금 10만원 정도의 경범죄 처벌법 사안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법적으로는 노상 방뇨와 비슷한 수준의 처벌이다. 2000년대 초부터 국회에서 스토커 처벌과 관련 법안이 여러 차례 발의됐으나 여전히 국회에 잠자고 있다. 직접적 위협이 없어 처벌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BTS의 ‘아미’의 경우 자신들이 사랑하는 연예인의 사생활을 스스로 지켜줘야 한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사실 이런 문제는 팬덤 내부에서 자생적 문화가 계속 확산되는 것 외엔 뾰족한 해결책이 없다”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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