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기업들은 준비돼 있나요”
#1. GS25 편의점 운영사인 GS리테일은 올해부터 삼각김밥과 도시락, 샌드위치 같은 식품을 10대 학생들과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아이디어 제안은 물론, 실제 품질 검사까지 학생들을 직접 참여시켜 그들의 기호에 맞는 ‘고객 밀착형’ 먹거리를 만들 계획이다. 이를 위해 GS리테일은 경기 시흥시 한국조리과학고와 지난 6일 공식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2. 신세계백화점의 화장품 편집숍 ‘시코르’에는 ‘셀프 바’가 있다. 집 화장대를 매장에 옮겨놓은 듯한 셀프 바에서 고객들은 관심 있는 제품을 자유롭게 발라보며 테스트한다. 다양한 빗과 헤어 드라이어까지 갖춰져 있어 ‘풀 스타일링’도 연출해볼 수 있다. 메이크업 스튜디오를 연상케 하는 화려한 인테리어와 조명은 고객을 더욱 돋보이게 만든다.
#3. 지난해 KT&G에 입사한 20대 최모씨는 그 해 여름 주말, 부서 상사인 50대 이모씨와 강원도 속초로 낚시 여행을 다녀왔다. 고참과 주말 낚시라니, 주변에선 “직장 내 괴롭힘 아니냐”는 반응이 많았다. 하지만 이는 사내 ‘역(逆) 멘토링’ 프로그램이다. 선배 직원이 신입사원을 멘토 삼아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소통 기회를 넓히겠다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Z세대가 기업의 업무 방식과 사내 문화까지 바꿔놓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에서 Z세대로 이어지는 ‘너무나 다른 그들’은 기업 입장에서 미래의 고객이자 직원이다. 일찌감치 그들에게 ‘눈도장’을 찍지 못하면 미래가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는 위기 의식이 기업들 사이에선 이미 파다하다. Z세대의 눈에 들어야 한다는 절박함에 기업들은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유머와 호기심 담아야 ‘인스타그래머블’
GS리테일은 지난해 여름 중·고등학생 50명을 경기 오산시 먹거리 상품 제조공장에 초청했다. 제품 생산 과정의 체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브랜드 신뢰도와 긍정적인 이미지까지 끌어올리기 위한 전략이었다. 올해는 이를 확대해 아예 Z세대와 공동으로 제품을 개발하기로 하고 조리과학고와 협약을 맺은 것이다. GS리테일 관계자는 “미래의 소비 주역이 될 고객들을 장기적으로 유치하기 위한 활동”이라고 소개했다.
편의점을 비롯한 식품업계는 Z세대에게 인기인 제품들의 공통 요소에 특히 주목한다. 바로 유머와 호기심이다. 재미있거나 궁금증을 일으켜야 ‘인스타그래머블(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제품으로 Z세대에게 인정받는다. 기업들의 기존 제품 개발이나 마케팅 방식만으로는 Z세대를 관통하는 이들 키워드를 잡아내기 어렵다. 소비자 반응에 민감한 식품기업들은 그래서 Z세대의 일상을 파고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쇼핑몰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오뚜기는 독특한 상품들로 Z세대에게 인기 있는 온라인 쇼핑몰 ‘텐바이텐’과 함께 ‘화끈팩’을 한정수량으로 최근 출시했다. 자사 제품 ‘열라면’과 같은 디자인의 봉지를 열면 라면 면발 모양 핫팩과 라면스프 형태 스티커가 들어 있어 웃음을 자아내는 이 제품은 SNS를 타고 확산됐다. 오뚜기 관계자는 “매출이나 수익을 염두에 두기보다 Z세대에게 회사를 알리려고 만든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기업들은 신제품을 오프라인보다 온라인에 먼저 출시하고(팔도 라면 ‘괄도네넴띤’), 여러 제품을 모아 조합하면 특정 의미가 되도록 포장에 글자를 적어 넣고(매일유업 우유 ‘우유속에’), 전용 브랜드를 개발(아모레퍼시픽 남성 화장품 ‘비레디’)하면서 Z세대에게 다가가고 있다.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스로를 드러내 보이려는 Z세대에겐 직원이 고객을 계속 따라다니면서 제품을 추천해주던 기존 화장품 마케팅은 무의미하다. 신세계백화점은 이에 과거 퍼스널(개별) 마케팅과 정반대인 ‘언택트(대면하지 않는)’ 마케팅을 고안했다. 그 결과물이 시코르의 셀프 바다. 시코르 매출에서 20대 비중은 개점 이후 3년간 쭉 20%를 넘기며 화장품 ‘큰 손’ 40대를 제쳤다.
시코르를 찾은 ‘20대 파워’는 명품 브랜드까지 변화시켰다. 2017년 샤넬은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내 본 매장과 별도로 지하 시코르 옆에 새 매장을 열었다. 명품 브랜드가 추가 매장을, 그것도 지하에 내는 건 이례적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비싸고 올드한 이미지를 벗기 위해 직원 의상과 매장 분위기를 기존 샤넬 매장보다 밝게 바꾸는 등 시코르를 의식한 흔적이 보인다”고 귀띔했다.
“Z세대와의 융화가 사업 성패 가를 것”
KT&G 등 다양한 기업이 시도 중인 역멘토링은 Z세대를 조직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이다. 롯데백화점 20대 직원 오모씨 역시 지난 4개월 동안 회사 임원진의 멘토로 활동하면서 매주 금요일 한 주 간의 트렌드나 키워드를 공유했다. 오씨는 “요즘 젊은이들이 디테일하고 섬세한 감성에 기성세대보다 더 많이 반응한다는 데 멘토와 멘티 모두 공감했다”며 “향후 마케팅 전략에도 이번 경험을 활용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회사의 성장이 곧 개인의 성장’이라는 인식으로 조직과 개인을 동일시하던 기존 기업 문화를 바꾸는 게 급선무라고 입을 모은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Z세대 보고서는 “Z-지니커를 이해하고 성과를 내게 할 수 있는지가 기업 성패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Z-지니커(Z-geneker)’는 Z세대(Z generation)와 직장인(worker)의 영문을 합한 신조어다.
보고서는 Z-지니커의 특성을 3가지로 요약했다. 자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실천하며, 취향을 중심으로 가벼운 관계를 맺고, 소신을 거리낌 없이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를 감안해 기업들도 천편일률적인 온·오프라인 사내 교육 이수를 강요하기보다 직원 개인의 학습을 다양한 방식으로 지원하고, 근무 공간이나 일정도 창의적·자율적 방향으로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는 진단이다. 또 일방적인 충성 요구보다 Z-지니커의 자존감을 자연스럽게 끌어올릴 수 있는 업무 체계는 필수다.
주요 기업들에선 이 같은 트렌드가 조금씩 자리 잡아가고 있다. CJ그룹은 5년마다 최대 한달 재충전을 위한 ‘창의휴가’를 제도화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쿠팡 등은 회의실과 휴게실의 벽을 허물고 있다. 젊은 직원들이 분위기를 바꿔가면서 업무 능률을 높이고, 어디서나 격의 없이 어울리도록 해 상명하복 중심의 조직 문화를 변화시키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아직 일부 기업에 한정돼 있다. Z세대를 위한 변화가 근무 환경이나 복지 측면에 머물러 있다는 점도 한계다. 최지현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기업들이 Z세대의 가치관을 인사 제도에도 반영하고 신사업 발굴 전략으로도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임소형 기자 precare@hankookilbo.com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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