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생태학살자’ 몬산토를 법정에 세우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생태학살자’ 몬산토를 법정에 세우다

입력
2020.01.09 20:00
수정
2020.01.09 21:17
23면
0 0
스리랑카 파다비야 병원의 투석센터. 글리포세이트로 만든 제초제에 노출돼 발생한 것으로 여겨지는 신장 질환이 이 병원 환자 사망 원인 1위다. 시대의창 제공
스리랑카 파다비야 병원의 투석센터. 글리포세이트로 만든 제초제에 노출돼 발생한 것으로 여겨지는 신장 질환이 이 병원 환자 사망 원인 1위다. 시대의창 제공

1994년 스리랑카 중북부 도시 아누라다푸라에서 새로운 신장 질환이 발견됐다. 이전까지 스리랑카에서 알려지지 않은 병이었다. 정체불명의 신장 질환은 곧 전염병처럼 퍼져 나갔다. 환자들 대부분은 제초제나 화학비료를 사용하고 우물물을 마시는 청장년 남성들이었다. 우물물에선 제초제의 잔류물인 글리포세이트가 검출됐다. 우물물에 함유된 마그네슘과 칼슘이 글리포세이트와 화학 반응해 신장 질환을 유발한 것으로 추정됐다. 제초제는 세계 최대 농화학기업 몬산토의 히트상품 라운드업(Roundup)이었다. 몬산토의 비밀문서에 따르면 글리포세이트에 노출된 들쥐들이 신장이 타오르는 만성 질환 증세를 보였다. 몬산토는 글리포세이트의 유해성을 알면서도 라운드업을 판매한 셈이다.

프랑스 언론인이자 감독인 마리-모니크 로뱅이 집필한 책은 몬산토의 악행을 고발한다. 글리포세이트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알면서도 이를 감추고 판매해 수 많은 피해자를 낳았다는 것이다. 책은 저자가 스위스 환경운동가들의 의뢰로 몬산토를 국제법정(2016년 10월 15, 16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에 세우기까지의 과정과 법정에서 나온 증언들을 담았다. 정부와 학계, 언론을 움직여 진실을 감추려는 거대 기업의 행태, 환경오염의 심각성 등이 녹아 있다.

에코사이드

마리-모니크 로뱅 지음ㆍ목수정 옮김

시대의창 발행ㆍ400쪽ㆍ1만9,800원

1901년 미국에서 설립된 몬산토는 한때 마법사 같은 기업으로 여겨졌다. 1950년대 첨단 화학기술을 바탕으로 폴리우레탄 등 플라스틱 제품을 생산하며 각광받았다. 베트남전쟁 때는 고엽제 에이전트 오렌지로 미군의 작전 수행을 도왔다. 하지만 에이전트 오렌지로 몬산토는 악명을 얻기 시작했다. 참전 군인 등에게 암과 각종 유전병 등 커다란 후유증을 남겼다. 라운드업도 에이전트 오렌지와 비슷한 길을 걸었다. 몬산토는 1971년 에이전트 오렌지의 사용이 금지된 후 라운드업(일제검거, 일망타진)을 내놓으면서 신제품이 이름에 걸맞게 풀을 모두 제거해 주면서도 환경친화적이라고 주장했다. 제초제의 효용성을 알면서도 높은 위험성에 주저하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전 세계적으로 라운드업 사용량이 급증하자 역효과는 곧 나타났다. 라운드업에 내성을 지닌 잡초가 생겨났고, 토양 오염과 더불어 인체에 악영향을 준다는 증거들이 속속 나타났다. 라운드업이 제초를 넘어 ‘생태학살(Ecocide)’을 저지른 것이다.

아르헨티나인 파비안 토마시(왼쪽)와 '에코사이드'의 저자 마리-모니크 로뱅. 파비안은 글리포세이트 살포 비행기 탱크에 제초제를 채우는 일을 했다. 2018년 9월 숨졌다. 시대의창 제공
아르헨티나인 파비안 토마시(왼쪽)와 '에코사이드'의 저자 마리-모니크 로뱅. 파비안은 글리포세이트 살포 비행기 탱크에 제초제를 채우는 일을 했다. 2018년 9월 숨졌다. 시대의창 제공

프랑스인 사빈 그라탈루와 그의 아들도 라운드업의 피해자다. 남편과 승마 교실을 운영하던 그라탈루의 아들은 심각한 호흡기 장애를 안고 태어났다. 그라탈루는 나중에야 원인을 추정할 수 있었다. 임신 중 승마 경주장에서 이틀 동안 살포기로 제초제를 뿌렸다는 것, 제초제의 화학약품이 임신 초기 태아의 신체기관 형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몬산토를 피고로 불러낸 국제법정은 정식 사법체계 안에서 작동하진 않는다. 하지만 저자 등은 세계 여론에 반향을 일으켜 몬산토의 ‘생태학살’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다루게 할 수 있다고 봤다. 국제법정에 참여한 저명 법률가 5명은 생태학살이 로마규정(국제범죄의 형사처벌을 위해 맺어진 조약)에 포함돼야 한다는 권고 의견을 냈다.

라제기 기자 wender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