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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어본다, SF] 휴고상을 석권한 여성 흑인 작가, 신인류를 상상하다

입력
2020.01.1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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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학소설(SF)을 문학으로, 과학으로, 때로 사회로 읽고 소개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지식큐레이터(YG와 JYP의 책걸상 팟캐스트 진행자) 강양구씨가 ‘한국일보’에 격주 금요일에 글을 씁니다. 

 <23> N.K.제미신의 ‘다섯 번째 계절’

2018년 영국환상문학협회는 영국환상문학상의 특별상이자 그 해 장르소설계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칼 에드워드 와그너상을 제미신에게 수여했다. 황금가지 제공ㆍlaura hanifin
2018년 영국환상문학협회는 영국환상문학상의 특별상이자 그 해 장르소설계에 공헌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칼 에드워드 와그너상을 제미신에게 수여했다. 황금가지 제공ㆍlaura hanifin

언제일까. 아무도 모른다. 막연히 짐작만 할 뿐이다. 지구온난화가 초래한 기후 변화로 현재의 인류 문명이 결딴나고 나서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일 수도 있다. 태양을 돌던 소행성이 우연히 지구와 부딪쳐서 엄청난 재앙이 지난 후일 수도 있다. 어쨌든 지구에 존재했던 옛 문명을 기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수천 년, 수만 년 전의 유적만 곳곳에 있을 뿐이다.

바다로 둘러싸인 하나의 대륙(고요)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는 사람들은 나름의 문명을 꾸린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유럽 중세 시대 같기도 하고, 아메리카 대륙에 막 정착하기 시작한 미국 동부 초기 정착민 같기도 하다. 운 좋게 도시에 살아가는 사람의 생활수준은 오늘의 시각에서 봐도 상당하다. 이들에게 바다 건너 세상은 알 바가 아니다.

이 세상에는 계절이 다섯 개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다섯 번째 계절’. 소설 제목이 ‘다섯 번째 계절’인 것도 이 때문이다. 다섯 번째 계절은 대체로 종잡을 수 없는 조산운동(orogeny) 때문에 도래한다. 갑자기 지진(흔들), 화산(불쾅) 활동이 일어나고, 그 후폭풍으로 짧게는 수년에서 길게는 수천 년까지 문명의 지속이 어려울 정도의 재앙이 덮친다.

이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최대 관심사는 다섯 번째 계절이 언제 도래할지, 또 그렇게 도래한 다섯 번째 계절에 생존이 가능할지다. 이런 세상에서 보통 사람과 다른 특별한 능력 즉, 지진이나 화산 활동을 예측하고 심지어 일으키거나 막을 수도 있는 ‘조산력’을 타고난 신인류 ‘오로진’이 탄생했다는 설정도 기막히다.

다섯 번째 계절

N. K. 제미신 지음ㆍ박슬라 옮김

황금가지 발행ㆍ612쪽ㆍ1만5,800원

미국의 소설가 N. K. 제미신의 ‘다섯 번째 계절’은 이렇게 불확실한 세상에서 특별한 능력을 타고나 ‘남과 다른 삶’을 살아가는 한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소설이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평범한 시골의 아낙으로 살아가던 주인공 ‘에쑨’은 어느 날 충격적인 사실에 직면한다. 남편이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아들을 죽이고, 딸을 데리고 떠난 것이다.

마침 그 시점에 오랫동안 잠잠하던 고요 대륙 중심부에 커다란 재앙이 덮치고,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다섯 번째 계절이 왔음을 직감한다. 에쑨은 남편과 딸을 찾아서 떠나는 길고 긴 여정을 시작한다. 역시 자신과 같은 능력을 타고난 딸을 구하기 위해서, 또 피붙이 아들을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때려죽인 남편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제미신의 ‘다섯 번째 계절’은 그가 펴낸 ‘부서진 대지(Broken Earth)’ 3부작의 첫 번째 이야기다. ‘다섯 번째 계절’이 에쑨의 과거와 현재의 기구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에 나온 ‘오벨리스크의 문’에서는 남동생을 죽인 아버지 손에 이끌려 집을 떠난 딸 ‘나쑨’의 모험 이야기가 겹치면서 더욱더 흥미를 자극한다.

SF는 오랫동안 백인 남성 작가의 영역으로 여겨져 왔다. 아프리카계 여성 작가 제미신은 ‘다섯 번째 계절’로 2015년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최초로 권위 있는 SF 문학상인 휴고상 최우수 장편상을 수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잇따라 발표한 ‘부서진 대지’ 두 번째(‘오벨리스크의 문’), 세 번째 이야기로 2016년, 2017년 휴고상을 연달아 수상하는 기록을 세웠다.

제미신이 완전히 새롭게 창조한 세계(고요 대륙)에서 펼쳐지는 모녀의 모험 이야기는 그 자체로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하다. 여기에다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는 차별(인종차별)과 통념을 깨는 관계에 대한 성찰은 인류의 못난 모습에 대한 작가의 따끔한 일침이다. 일단 ‘다섯 번째 계절’의 매력에 빠지면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을 못 이루리라 확신한다.

SF 초심자 권유 지수 : ★★★. (별 다섯 개 만점)

강양구 지식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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