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부동산 투자 수요 감소 등의 효과로 가계의 여유자금이 늘어난 반면, 기업은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자금 사정이 지속적으로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도 경기부양 목적으로 지출을 늘리면서 예년보다 순자금운용 규모가 줄었다.
9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3/4분기중 자금순환’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규모 자영업자, 비영리단체 등을 포함한 가계의 지난해 3분기 순자금운용 규모는 17조6,000억원으로 2018년 같은 기간(12조원)대비 5조6,000억원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순자금운용이란 경제 주체가 보유한 예금ㆍ보험ㆍ채권 등 자금운용액에서 대출금과 발행한 채권 등 자금조달액을 뺀 개념으로, 통상 여유자금을 의미한다.
한은은 가계의 여유자금이 확대된 이유로 2018년 대비 부동산 투자 수요가 감소해 대출이 줄어들었고, 시장의 불확실성 때문에 위험자산보다는 안전한 예금을 선호했기 때문이라고 봤다. 시중은행 등 금융권이 새 예대율(예수금 대비 대출금) 규제 시행에 대비해 예금을 적극 유치하면서 단기 예치금이 늘어나는 요인도 작용했다.
반면 작년 3분기 비금융법인기업의 순자금운용 규모는 -18조9,000억원으로 2018년 3분기 대비 10조1,000억원 감소했다. 기업은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입장이라 순자금운용이 마이너스로 나타나는 게 통상적인 현상이지만 지난해 3분기 수치는 분기별로 치면 2011년 3분기(-19조5,000억원) 이후 가장 낮았다.
특히 기업의 수익성을 대표하는 금융기관 예치금이 4조2,000억원에 불과, 전년 동기(12조8,000억원)에 비해 크게 축소됐다. 기업운영이 그만큼 빠듯했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투자를 늘린 것도 아니었다. 자금조달 규모가 28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50조4,000억원) 대비 크게 감소했다. 한은 관계자는“기업이 저금리 상황을 기해 회사채 발행을 늘리긴 했지만 설비투자로 이어지진 않았고 불확실성에 대비한 선제적 자금 조달 성격이 강했다”고 밝혔다. 작년 3분기는 미ㆍ중 무역분쟁의 격화 등으로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절정에 달했던 시점이었다.
정부의 자금운용도 한층 빠듯해졌다. 작년 3분기 정부의 순자금운용은 16조6,000억원으로 2018년 3분기 대비 1조3,000억원 감소했다. 정부는 통상 상반기에 국채를 발행해 재정을 집행하고 하반기에 초과세입으로 부채를 상환하는 방식으로 자금을 운용하는데, 올해는 상환 규모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 관계자는 “정부가 적극적 재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근거”라고 밝혔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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