닛산 축출 관련 日 정부 배후설엔 “진주만 공격 같아”
“사내 쿠데타의 희생양인가, 희대의 도망자인가.”
헐리우드 영화 뺨칠 정도의 감쪽같은 도주극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을 둘러싼 평가는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곤 전 회장은 자신을 닛산의 일본인 경영진이 일으킨 사내 쿠데타에 의해 검찰 수사를 받은 희생자라고 주장했고, 반면 일본 검찰은 보석 조건을 어기고 불법적인 수단으로 레바논으로 출국한 도망자임을 부각하면서 치열한 국제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곤 전 회장은 8일 오후(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도주 이후 첫 기자회견을 열었다. 검은 정장에 붉은 넥타이 차림으로 등장한 그는 “내 말을 빼앗긴(내가 구금된) 이후 400일 넘게 이 날을 기다려왔다”며 “나는 결백을 위해 싸워왔다”며 입을 열었다. 그는 일본 검찰을 비판하면서 “(변호인 없이) 하루 8시간 이상 심문을 받았다”며 “혐의를 자백하지 않으면 가족에 대해서도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했다”고 폭로했다. 이어 “나는 오늘 일본을 어떻게 탈출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겠다”며 “나는 사법 정의로부터 도망친 게 아니라 부당한 정치적 박해로부터 벗어난 것”이라며 도주를 정당화했다.
그는 레바논 입국이 알려진 직후인 지난달 31일 “나는 더 이상 유죄를 전제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일본 사법제도의 인질이 아니다”고 주장한 바 있다. 1시간 10분 정도 진행된 회견에선 예상대로 결백을 주장하며 일본 사법제도를 비판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자신이 검찰에 체포ㆍ기소된 배경으로 사이카와 히로토(西川廣人) 전 사장 등 닛산 측 일본 경영진 등을 지목했다. 그러나 닛산에서 자신을 제거하는 데에 일본 정부가 관여돼 있다는 주장에 대해선 “진주만 공격과 같았다”면서도 “레바논 정부와의 관계를 고려해 일본 정부 관계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며 말을 아꼈다.
닛산ㆍ르노 통합을 둘러싼 닛산 내 갈등설은 2018년 11월 곤 전 회장의 체포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 통합에 반대한 일본인 경영진이 곤 전 회장의 개인비위를 조작했고 이 과정에서 검찰과의 사법거래가 있었다는 게 곤 전 회장 측의 주장이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전날 캐럴에 대해 위증혐의로 체포영장 발부를 공표하면서 반격에 나섰다. 검찰은 캐럴이 지난해 4월 남편의 특수배임 혐의와 관련한 증인심문 당시 거짓 증언을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이 체포영장 발부 단계에서 관련 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지난달 미국 사법당국의 도움을 받아 곤 전 회장의 아들과 딸에 대한 조사를 실시하는 등 곤 전 회장 가족에 대한 전방위 압박에 나선 사실도 알려졌다.
캐럴에 대한 체포영장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수배를 통해 곤 전 회장 부부의 움직임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크다. 또 캐럴이 남편의 비위에 연루된 만큼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다. 곤 전 회장이 일본 검찰의 부당한 대우를 주장하며 아내와의 면회 금지를 거론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수사당국은 지난달 도쿄지검의 요청으로 곤 전 회장의 특수배임 혐의와 관련해 아들 앤서니와 딸 1명에 대해서도 조사했다고 NHK가 이날 보도했다. 닛산 자금 일부가 앤서니가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투자회사에 송금됐다는 의혹과 관련해 도쿄지검 입회 하에 의견을 청취했고, 앤서니는 “투자자금의 자금은 아버지의 자산에서 송금된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고 NHK는 전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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