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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C] 검찰권 남용을 인사권 남용으로 고친다면…

입력
2020.01.09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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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5˚C’는 한국일보 중견기자들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게, 사람의 온기로 써 내려가는 세상 이야기입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앞)과 윤석열 검찰총장(뒷줄 가운데)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합동인사회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앞)과 윤석열 검찰총장(뒷줄 가운데)이 2일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정부 신년합동인사회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있다. 연합뉴스

갖은 진통을 거쳐 검찰 간부 인사가 났다. 역시나 예상대로 윤석열 검찰총장 취임 이후 중용됐던 특수통 중심의 ‘윤석열 키즈’ 그룹이 물을 먹었다. 조국, 유재수, 울산시장 등 연이은 수사를 주도하며 지난 다섯 달 청와대와 여권을 애먹였던 그들이다. 인사 과정에선 법률상 보장돼 있는 ‘검찰총장 의견 청취’ 절차도 무시됐다.

인사권을 쥔 청와대가 윤 총장 등 현재 검찰 수뇌부에 강한 불신을 숨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 결과는 진작부터 예상됐다. 여권을 겨냥한 연속 수사를 ‘검찰권 남용’이라 여겨 왔던 청와대는, 권한 남용에 따른 책임을 인사로써 물은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키즈가 떠난 자리의 상당수는 문재인 정부와 인연이 있는 검사들이 채웠고, 후속 인사에서도 이들의 중용이 예상된다. 대통령 학교 후배, 조국 청문회를 담당했던 이들, 조국식(式) 검찰개혁을 주도한 법무부 사람들, 검찰조직 폐해를 안에서 비판하며 검찰개혁 당위성에 힘을 실었던 검사들이다.

청와대는 이번 인사를 통해 윤석열 키즈를 찍어 내는 것, 그 이상을 노린 것으로 보인다. 정권에 각을 세우지 않고 개혁에 동참할 검사들을 핵심부에 심으려는 게 이번 인사의 두 번째 핵심 목표였다. 청와대가 ‘정리’ 차원을 넘어 ‘이식’까지 목표로 잡은 것은 “윤석열을 믿고 썼던 지난 인사가 철저하게 실패했다”는 후회에서 비롯됐다. 청와대와 여권은 박근혜ㆍ이명박을 잡아넣고 양승태를 구속한 윤석열이 설마 우리에게 칼을 들이댈 줄 몰랐다는 배신감에 치를 떨어 왔다.

윤석열 ‘문책’에 그치지 않고, 또 다른 세력의 ‘양성’으로 나간 것. 이것이 이번 인사의 핵심이다. 물론 누구를 내치고 중용할 지 결정하는 것은 인사권자 고유권한이다. 윤석열 검찰의 ‘편향된 수사’(여권 주장에 따르면)를 ‘조직의 실패’로 규정한 청와대는 제도 개혁은 물론 인적 변화를 통해 검찰 개혁을 이루려고 한다.

윤 총장이 자초했다는 지적도 간과할 순 없다. 특정인 가족 비리에 귀중한 특수부 인력을 다 털어 넣었던 수사는 특별수사에 대한 반감을 유발했고, 정작 권력형 비리인 감찰무마 사건 등에서 특수부 자원을 활용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판단 착오 책임을 현 수뇌부가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앞으로 청와대 뜻을 거스르지 않는 인사들로 검찰 핵심부가 채워지면, 당장은 좀 더 편한 국정운용이 가능해지긴 한다. 그러나 검찰 인사가 문책 차원을 넘어, 새로운 세력을 키우려는 수준까지 이르는 것은 적정한 인사권의 한계를 넘어서는 일이다. 과거 사례를 봐도 권력기관이 정권에 치우친 것은 결국 불행한 결말로 이어졌다. 지난 정권 정보경찰의 대선개입이나 국가정보원의 댓글공작 등이 그 예다.

이미 지난 여름 검찰 인사에서 정권을 상대로 수사했거나 수사권 조정에서 다른 목소리를 냈던 일부 차장ㆍ부장검사들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좌천됐다. 공교로움이 두 번 이상 이어지는 경우, 이를 받아들이는 쪽에서는 ‘강력한 연관관계’ 내지 ‘필연적 인과관계’로 인식한다. 정권을 향해 각을 세운 검사들을 잇달아 좌천시킨 데 이어, 정권과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숨기지 않았던 검사들을 중용하는 인사가 이어졌기 때문에, 검찰 조직 전체에 매우 의미심장한 시그널을 주게 될 것이다. 충성하지 않으면 출세는 꿈꾸지 말라는.

그러나 효율성이 중시되는 여느 행정기관과 달리, 검찰 조직에 과도한 충성을 강요하는 것은 공평무사함에 대한 훼손으로 이어진다. 어느 방향으로든 검찰의 힘이 치우친 채 행사되는 게 바로 검찰권의 남용이다. 인사를 통해 정권의 DNA를 검찰 안에 이식하려 한다면, 검찰권 남용을 손보겠다고 인사권을 남용해 또 다른 검찰권 남용을 조장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우리는 각종 정치ㆍ사회적 논쟁들을 사법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재단하려 했던 이명박 정부 검찰에서, 검찰이 보여 준 정권 편향의 부작용을 이미 경험했다.

이영창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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