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 전 닛산 회장, 일본 검찰과 치열한 여론전
“사내 쿠데타의 희생양인가, 희대의 도망자인가.”
헐리우드 영화 뺨칠 정도의 감쪽같은 도주극으로 전 세계를 놀라게 한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을 둘러싼 평가는 상반된다. 곤 전 회장 측은 닛산 사내 쿠데타에 의해 검찰 수사를 받게 된 희생자였음을 주장하는 반면 일본 검찰은 보석 조건을 어기고 불법적인 수단으로 레바논으로 출국한 도망자임을 부각하며 치열한 국제 여론전을 벌이고 있다.
곤 전 회장은 레바논 입국 후 지난달 31일 “나는 더 이상 유죄를 전제하고 인권을 무시하는 일본 사법제도의 인질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8일 오후(현지시간)엔 레바논 현지에서 첫 기자회견도 갖는다. 이 자리에선 검찰 수사의 계기였던 닛산 내부조사를 ‘사내 쿠데타’로 규정하고 일본 정부가 배후라는 증거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그에게 비판적인 대다수 일본 언론은 회견에 초청받지 못했다.
회견에 앞서 곤 전 회장의 부인과 프랑스 측 변호인단은 도주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며 지원 사격에 나섰다. 부인 캐럴은 7일 프랑스 일간지 르파리지앵 인터뷰에서 “재판이 무기한 연기되는 상황에서 유일한 선택은 도주였다”며 “남편은 르노와 닛산 간 전쟁의 피해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 변호인단도 곤 전 회장의 부정을 밝힌 닛산 내부조사에 대해 “통합을 피하고 그를 끌어내리려 진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닛산ㆍ르노 통합을 둘러싼 닛산 내 갈등설은 2018년 11월 곤 전 회장의 체포 이후 꾸준히 제기됐다. 통합에 반대한 일본인 경영진이 곤 전 회장의 개인비위를 조작했고 이 과정에서 검찰과의 사법거래가 있었다는 게 곤 전 회장 측의 주장이다.
도쿄지검 특수부는 전날 캐럴에 대해 위증혐의로 체포영장 발부를 공표하면서 반격에 나섰다. 검찰은 캐럴이 지난해 4월 남편의 특수배임 혐의와 관련한 증인심문 당시 거짓 증언을 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검찰이 체포영장 발부 단계에서 관련 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캐럴에 대한 체포영장은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 수배를 통해 곤 전 회장 부부의 움직임을 제한하려는 의도가 크다. 또 캐럴이 남편의 비위에 연루된 만큼 면회가 허용되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도 있다. 곤 전 회장이 일본 검찰의 부당한 대우를 주장하며 아내와의 면회 금지를 거론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수사당국은 지난달 도쿄지검의 요청으로 곤 전 회장의 특수배임 혐의와 관련해 아들 앤서니와 딸 1명에 대해서도 조사했다고 NHK가 보도했다. 닛산 자금 일부가 앤서니가 경영에 관여하고 있는 투자회사에 송금 가능성과 관련해 도쿄지검 입회 하에 의견을 청취했고, 앤서니는 “투자자금의 자금은 아버지의 자산에서 송금된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는 것이다.
도주가 사전에 치밀하게 준비됐다는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은 곤 전 회장이 지난달 29일 도쿄 자택에서 나와 머문 도쿄시내 호텔 객실 예약자가 20대 미국인 남성이라며 중국으로 출국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곤 전 회장이 출국 과정에서 몸을 숨길 대형 음향기기 상자들을 준비하고 출국에도 동행한 미국인 2명 중 특수부대 출신 마이클 테일러가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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