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역서울284 ‘호텔사회’ 기획전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조선호텔에서 20년, 신라호텔에서 6년, 힐튼호텔에서 4년 등 호텔에서만 40년의 세월을 보낸 55년 경력의 정철수 이발사가 화려한 가위질, 빗질을 선보였다.
정 이발사는 8일 문화역서울 284에서 개막한 기획전 ‘호텔사회’에 참여했다. 호텔사회 전시는 개항기 신문화 수용의 현장이었던 근대 호텔의 이모저모를 집중 조명하는 자리다.
호텔 문화의 핵심 중 하나는 이발소다. 머리 깎는 게 뭐 대단한 일인가 싶지만, 그게 그렇지 않다. 이 땅에서 이발소는 1895년 단발령 이후 활기를 띠었다. 남성이 머리를 매만진다는 것은 꽤 사치스러운 일이었을 뿐 아니라, 근대적인 행위이기도 했다는 뜻이다. 이후 이발소는 정ㆍ재계 고위급 인사들이 드나드는 남성 사교의 장이 됐다.
정 이발사만 해도 호텔에서 40년의 세월을 보내면서 정일권 정원식 등 전직 국무총리는 물론, 이름 대면 알만한 재벌 회장 등 수많은 정ㆍ재계 인사들의 머리를 매만졌다. 일회성 만남도 아니다. 코오롱그룹의 경우 이원만 초대회장을 비롯, 집안 4대 모두가 정 이발사의 고객이었다. 관람객도 국무총리, 회장과 똑같은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온라인 예약으로 하루 5명, 무료로 손님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호텔사회 전시의 포인트 중 하나는, 이 같은 체험이다. 뉴트로 열풍이 한창인 이 시대에 맞춰 이발소뿐 아니라 근대 초입의 다양한 호텔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해뒀다.
전시장에는 ‘바 언더 워터’도 있다. 실제 서울 연남동에서 바를 운영 중인 장경진 작가가 직접 칵테일을 만들어 대접한다. 모히토 한 잔에 정신이 혼미해졌다면 객실로 이동해보는 것도 좋다. 백현진 작가의 ‘낮잠용 대객실’은 푹신한 매트리스의 천국이다. 매트리스가 한가득인 곳에 들어가 아무데나 누워 낮잠까지 자고 일어나면 호텔의 모든 것을 누려봤다 할 수 있다.
참, 호텔이라면 ‘소문’도 빼놓을 수 없다. 전시장 한쪽 구석엔 ‘가상 시나리오’가 가득하다. 홍은주 김형재 작가가 호텔을 주제로 한 드라마 5편을 보고 호텔에 숨겨진 역사를 끄집어냈다. 김영삼 김종필 같은 정치인들 이름이 거론되면서 마음이 혹하는데, 실은 다 지어낸 이야기다. ‘야사’는 그렇게 탄생한다.
글ㆍ사진=이정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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