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들이 세계 최대 규모의 가전ㆍIT 전시회인 ‘CES 2020’에 전례 없는 대규모 방문단을 파견하고 있다. 핵심 경영 과제로 떠오르고 있는 디지털 전환을 위해 신기술을 직접 보고 세계적인 IT 기업들과 제휴를 모색하겠다는 취지다.
7일 금융권에 따르면 KBㆍ신한ㆍ우리금융 등 국내 주요 금융회사들은 이날부터 12일(현지시간)까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리는 CES에 그룹 최고경영자(CEO)을 필두로 디지털 전략 담당 임직원들을 총출동시켰다.
KB금융은 윤종규 회장이 직접 현지로 달려갔다. 수년째 디지털 관련 부서 실무직원만을 CES에 파견했는데, 회장이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민은행과 카드, 경영연구소 등 계열사 임원과 실무직원 17명도 동행했다. 윤 회장이 직접 참여를 독려했다는 후문이다. KB금융 관계자는 “빠르게 변하는 신기술 트렌드를 현장에서 확인하고 금융과 융합할 수 있는 기회를 모색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 회장은 지난해 직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알리바바, 구글 같은 정보기술(IT)기업이 KB의 경쟁자일 수 있다”고 밝히는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디지털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신한금융 역시 지난해 신한금융의 디지털 전략을 주도했던 조영서 신한DS 부사장을 포함해 그룹사 임직원 12명이 CES에 참석했다. 이들은 글로벌 스타트업 엑셀러레이터 기업인 플러그앤플레이가 주최하는 현지 행사에도 참석해 네트워크를 다질 예정이다. 우리금융 역시 우리은행 디지털금융그룹 부서 내 실무자 4명으로 구성된 참관단이 현장으로 향했다.
사실 CES는 금융권과 거리가 먼 행사로 인식돼 왔다. 미국소비자기술협회(CTA)가 주관하는 CES는 국제가전박람회(IFA),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와 함께 세계 3대 기술 전시회로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 블록체인, 사물인터넷(IoT), 5세대(5G) 등 최신 ICT 기술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은행들이 앞다퉈 CES에 ‘필참’하고 있는 것은 금융업의 미래와 디지털 혁신에 대한 고민 때문이다. 은행들은 저금리ㆍ저성장에 따른 수익기반이 약화되면서 AI와 5G 이동통신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금융지주 수장들의 신년사에도 이런 분위기를 감지할 수 있다.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은 “금융의 경계를 뛰어넘어야 한다”며 핀테크 등 국내외 다양한 기업과 협업해 업을 초월한 지식의 융합을 시도하자”고 밝혔다.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은 주요 경영전략의 하나로 ‘디지털 혁신 선도’를 제시하며 “디지털과 협업을 통해 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구축하고 손님과 직원의 경험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화된 디지털 환경에 발맞춰 금융권이 발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도태할 것이란 게 이들의 우려다.
이 같은 움직임은 내달 말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리는 MWC 2020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MWC는 3대 전시회 중 모바일을 핵심 주제로 해 모바일 뱅킹에 관심이 높은 은행권이 최근 몇 년간 참관단을 꾸려왔다.
허경주 기자 fairyhk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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