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이 본격적으로 미국에 대한 보복 절차에 돌입하고 있다. 이란은 7일(현지시간) 미국에 대한 보복 시나리오가 13개가 준비돼있다면서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가혹한 복수’ 다짐을 구체화하는 모양새이지만 아직 가시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진 건 아니다. 결국 이란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이번 사태의 추이가 결정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알리 샴커니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사무총장은 이날 미국에 보복할 ‘13가지 시나리오’를 고려하고 있다면서 “가장 약한 경우가 ‘미국인에게 잊지 못할 역사적 악몽’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미국이 중동에서 즉시 스스로 나가지 않으면 그들의 시체가 중동을 뒤덮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시나리오의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같은 날 호세인 살라미 이란 혁명수비대(IRGC) 총사령관도 “미국이 아끼는 곳을 불바다로 만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란 의회도 IRGC의 전투능력 강화에 2억유로를 추가로 투입하고, 미군 전체와 미 국방부를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안을 가결하는 등 미국에 대한 보복을 준비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앞서 6일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는 이례적으로 국가안보위원회를 직접 찾아 “미국에 비례적이고 직접적인 공격으로 보복하라”고 지시했다. 샴커니 총장의 이날 발언은 하메네이의 지시에 따른 후속 대책으로 보인다.
다만 이란의 군사적 움직임은 아직 구체화하지 않은 상태다. 자칫 미국과의 직접적인 무력충돌로 비화할 수도 있다는 점을 의식하는 듯하다. 실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대표와의 5일 통화에서 “이란은 긴장 고조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신 사이버 공격은 언제든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경제 전문매체 CNBC는 미 정부와 민간 보안 전문가를 인용해 이란 해커들이 미국 정부기관 홈페이지를 ‘피싱’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 세계 원유의 20%가 이동하는 통로인 호르무즈해협 봉쇄도 언제든 이란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다. 시아파민병대(이라크)나 헤즈볼라(레바논), 후티 반군(예멘) 등을 앞세운 대리전도 충분히 예상해볼 수 있다.
미국은 이란의 행동 수준에 맞춰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솔레이마니 제거 이후 미 전역에서 반전 집회가 일어나고 하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군사행동 권한 제한에 나선 상황에서 추가로 선제적인 적대행동을 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최고 테러리스트’를 제거한 만큼 확전보다는 상황 관리에 집중하는 게 훨씬 실익이 크다는 점도 분명하다. 물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던 자리프 외무장관의 비자 발급을 거부하는 등 국제협정을 위반하면서까지 이란에 대한 직간접적인 압박은 이어가는 모습이다.
하지만 미국이 갈팡질팡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라크 주둔 미군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서한이 공개되자,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은 “철군 계획이 없다”고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 표적으로 이란의 문화유적지를 지목했다가 이란은 물론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에 직면하자, 에스퍼 장관이 나서 이란의 문화유적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일축하기도 했다.
일각에선 양국 간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란이 핵합의(포괄적공동행동계획ㆍJCPOA)를 사실상 탈퇴하면서 핵개발 가능성이 제기되지만, 켈리엔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이란이 정상국가처럼 행동하기 시작하면 새 핵합의를 협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결코 핵무기를 갖지 않을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도 같은 맥락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김진욱 기자 kimjinu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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