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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권위 바람 탔다지만 … 양준일, 무엇을 보여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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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권위 바람 탔다지만 … 양준일, 무엇을 보여줄까

입력
2020.01.08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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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양준일이 지난달 3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린 팬미팅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수 양준일이 지난달 3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 대양홀에서 열린 팬미팅 기자간담회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 4,000석에 이르는 팬미팅 입장권이 순식간에 매진됐다. 접속자가 몰리면서 티켓판매사이트 서버가 다운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TV 인기 가요프로그램 녹화장 앞에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수백 명의 팬들이 줄을 서며 대기했다. 화제가 된 지 한 달 만에 대기업 광고도 찍었다. 최근 일주일 사이 벌어진 이 일들은 아이돌 그룹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30년 만에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가수 양준일(51)이 만들어낸 현상이다.

지난해 시작된 ‘양준일 신드롬’이 새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참 활동하던 1990년대 초에도 겪어보지 못한 인기라 본인조차 당황스러워한다. 스스로 자기 인기를 두고 “충격적이다” “신기하다”고 말한다. 양준일 자신도 “매일 매일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할 만큼 난데 없는 인기다.

대중은 왜 30년 가까이 잊혀졌던 가수에게 열광할까.

우선 꼽히는 건 틀에 박힌 형식을 거부하는 태도다. 1990년대 가수 양준일이 데뷔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고 30년 가까이 지나 다시 인기를 끌 수 있게 해준 자양분이다. 유려한 패션ㆍ음악 감각, 50대에도 미소년 같은 외모도 한 몫 했다.

물론 반응은 극과 극이다. 다분히 보수적이었던 1990년대 초반, 이국적이고 양성적인 매력을 내세운 양준일은 거부당했다. 오죽했으면 1992년 내놓은 노래 ‘가나다라마바사’에 ‘아으 밥맛 떨어져, 왜 이렇게 머리가 기냐, 어쭈 귀고리까지 했어, 여잔지 남잔지 모르겠다’ ‘우와 잘 어울린다, 멋있어’라는 대화까지 집어넣었다. 시대가 바뀌고 대중들이 그를 ‘탑골 GD(그룹 빅뱅 멤버)’라 부르며 다시 불러낸 ‘2019년 양준일’은 멋진 사람이다.

이런 인생 역정도 호감의 이유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실력 있는 사람이 제대로 기회를 갖지 못하고 외면당했다는 데 대해 다양한 세대가 공감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도 “편협한 사회 때문에 냉대 받다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성공하는 영화 같은 스토리가 현실에 나타났기에 사람들이 느끼는 감동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꼰대’로 곧잘 치환되는 50대 남성과는 달리, 소탈하고 겸손한 모습도 인기 요인이다. 지난달 31일 서울 광진구 세종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자신의 매력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양준일은 “내 스스로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내가 파악하기 시작하면 내 머릿속에 공식이 생기고 그대로 따라 하다 공식을 죽이게 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김헌식 평론가는 “펭수가 인기 있는 게 권위에 맞서 시원하게 말하는, 현실에서 보기 힘든 캐릭터이기 때문인데, 양준일이 권위적이지 않고 겸손하고 수평적인 태도를 일관성 있게 보여준다는 점도 대중의 지지를 받는 요인일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초의 양준일. 한국일보 자료사진
1990년대 초의 양준일.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양준일의 ‘롱런’ 가능성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반응이 많다.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1990년대 초반 양준일이 새로웠다지만, 그 때는 기존 가요에 없었던 새로운 문법을 실험하는 작품이 많았던 때였다”고 말했다. 양준일 또한 독특한 댄스 가수 중 하나였을 뿐이란 얘기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는 “음악 스타일이 다소 앞섰던 측면은 있으나 표절 문제 등 마냥 긍정적으로 볼 수 없는 부분도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양준일이 새롭게 선보일 콘텐츠에 대한 물음표로 연결된다. 자신만의 새로운 면모를 내보이지 못할 경우, 한때의 신드롬만으로 끝날 수도 있다는 경고다. 양준일이 귀국하자마자 1990년대 음악을 다시 내겠다고 한 것을 두고 나쁜 선택이었다는 지적도 많다. 한 가요기획사 대표는 “양준일이 인기를 얻었다지만, 그의 노래가 음원 차트에서 실제 역주행할 정도는 아니었다”며 “대중의 기대가 높은 만큼, 성급하게 움직여서 스스로의 가치를 소진시키기 보다 유능한 프로듀서와 손잡고 충분한 준비시간을 가지고 신곡을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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