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보드 타는 모습 담으려 스마트폰 들고 거꾸로 내려오기도
“우리 아이 잘 하나 보고 싶다” 강사에 영상 요구하는 부모까지
직장인 김성훈(33)씨는 얼마 전 스키장에서 스노보드를 즐기다 크게 다칠 뻔 했다. 한 남성이 스키를 타고 내려오는 지인을 카메라로 찍으려고 급하게 방향을 틀다 빠른 속도로 활강하던 김씨와 스쳐 지나가는 아찔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씨는 “순간적으로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면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최근 스키장에서 지인이나 자녀의 스키 타는 모습을 찍겠다며 무리하게 카메라를 꺼내는 ‘스키 촬영족’이 늘어나며 안전사고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본보가 지난 5일 확인한 경기 지역의 한 스키장에서도 ‘스키 촬영족’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스키를 타는 자녀 뒤를 따라 활강하면서 휴대폰이나 ‘셀카봉’을 손에 쥐고 촬영하는 위험천만한 장면이 슬로프마다 끊이지 않고 목격됐다. 심지어 슬로프 위쪽을 바라본 채 거꾸로 내려가며 촬영하는 이들도 있었다. 슬로프 인근에 설치된 안전수칙에는 스키 중 촬영에 대한 주의사항 같은 건 없었다.
초ㆍ중급 코스에서 초등학생을 가르치는 스키 강사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스키를 즐기는 아이를 찍어달라는 부모 성화에 못 이겨 자의 반, 타의 반 촬영족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게 강사들의 주장이다. 한 현직 강사는 “학부모들이 직접 수업 현장을 보지 못하니 영상을 요구하기도 하고 학교에 제출할 현장학습 자료용으로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촬영 없이는 강습을 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기 위해 스키 타는 도중에 수시로 휴대폰을 꺼내 드는 이들도 적지 않다. 스키는 대표적인 스피드(속도) 스포츠인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스키어와 촬영족이 부딪칠 뻔 하는 아찔한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한국스키장경영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스키 시즌(2018~19년) 전국 15개 스키장에서 일어난 안전사고는 7,940건이었다. 이 중 사람 간 충돌이 3,458건(43.6%)에 달했다. 대부분 개인 부주의나 과속 때문인데, 사고가 나면 골절(전체 사고 중 12.5%), 탈구(5%), 두부손상(3.6%) 등 큰 부상으로 이어지는 비율도 낮지 않다.
전직 스키강사 문모(31)씨는 “이른바 스키 ‘고수’들은 돌발 상황에도 본능적으로 대처하겠지만 초보자들이 많아 충돌사고가 빈발하는 초ㆍ중급 코스에서 촬영은 절대로 해선 안될 행동”이라고 우려했다.
대부분의 스키장들은 아직 대형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무런 안전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법적으로 슬로프 인근에 의무 게시하는 안전수칙에도 현재는 ‘음주 스키 금지’ ‘직활강ㆍ과속ㆍ난폭 스키 금지’만 들어가 있다.
한국스키장경영협회 관계자는 “활강 중 촬영은 ‘안전 스키’를 위한 철칙인 전방 주시 의무를 어기는 거라 별도의 감시가 필요해 보인다”며 “스키장 별로 안전요원이 틈틈이 촬영족에게 주의를 주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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