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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겨울잠 자나” … 이상고온에 제주는 반팔 차림

입력
2020.01.07 17:20
수정
2020.01.07 22:19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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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만에 가장 따뜻한 1월… 7일 제주 최저기온 18.5도, 유채꽃 활짝

눈 대신 비에 화천 산천어축제 ‘물난리’… 안동ㆍ제천 등 축제 비상

6일 대구시 수성구 수성못 주변에 개화 시기인 3월이 아닌 1월에 핀 개나리가 겨울비를 머금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6일 대구시 수성구 수성못 주변에 개화 시기인 3월이 아닌 1월에 핀 개나리가 겨울비를 머금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제주시에 5년째 거주 중인 주부 최혜선(43)씨는 재작년에 산 롱패딩을 올겨울 들어 한 번도 꺼내 입지 않았다. 원래 다른 지역에 비해 따뜻한 편이라지만, 올해 들어 제주의 평균 낮 기온은 20도에 육박해 봄 날씨와 다름없어서다. 주위엔 봄꽃인 유채꽃이 만개했고, 반소매 셔츠만 입고 다니는 사람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겨울이 겨울잠에 빠져들었다는 말도 들린다. 최씨는 “지난 일요일(5일)에는 한낮에 날씨가 따뜻해 외투를 벗고 다녔다”고 말했다.

겨울이 사라졌다. 이례적으로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7일 제주를 비롯한 일부 남부지방의 기온이 관측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따뜻해진 겨울 탓에 지방자치단체들이 공을 들여 준비한 동절기 축제들은 줄줄이 공치고 있다. 인공눈으로 덮인 스키장에는 손님이 줄고, 봄날을 기다리던 골프장에는 사람들이 줄을 잇는 진풍경도 펼쳐진다.

최저기온 비교. 그래픽=신동준 기자
최저기온 비교. 그래픽=신동준 기자

제주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25분 기준 제주의 최고기온은 23.6도로 1월 기준으로 1923년 관측 개시 이래 97년만에 최고값을 경신했다. 이날 최저기온 역시 18.5도로 1월 기준 가장 높았다. 이는 제주의 평년(1981~2010년) 최저기온 보다 14.8도 높고, 지난해 1월 7일의 일 최저기온보다도 15.4도 높다.

서귀포의 이날 최저기온은 17.3도, 전북 고창 10.3도, 전남 순천 7.1도로 역시 관측이래 1월 중 최고값을 경신했다. 울릉도(8.2도)와 흑산도(11.3도)의 최저기온은 역대 1월 최저기온 중 두 번째로 높았고, 전남 목포(9.4도), 전북 부안(7.7도), 전북 정읍(9.6도)은 세 번째로 높았다. 이 외에도 전국 대부분 지역의 일 최저기온이 평년보다 10~13도가량 높은 분포를 보였다.

기상청은 이날 전국의 기온이 이례적으로 오른 이유에 대해 “상대적으로 따뜻한 공기가 남서풍을 따라 유입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겨울이면 한반도로 차가운 공기를 몰고 오는 시베리아 고기압이 올 겨울 들어 약해진 상황인데다, 우리나라 서해상에 위치한 저기압을 틈타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쪽기류가 평소보다 많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저기압의 영향으로 6일 오후부터 내린 겨울비도 기온이 오르는데 영향을 줬다. 밤새 비가 내리고 바람이 분 탓에 바람이 잔잔할 때 발생하는 복사냉각 현상이 발생하지 않았다는 분석이다. 이번 비는 겨울비 답지 않게 강수량도 많아 7일 오후 3시 기준 서울(23㎜) 등 수도권과 춘천(24.9㎜) 강릉(66.8㎜) 등 전국 곳곳에서 1월 상순(1~10일) 일 강수량 최고기록을 경신했다.

온화한 겨울날씨는 지난달부터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12월 전국 평균 기온이 2.8도로 평년(0.5~1.5도)보다 높았다. 따뜻한 기온으로 눈보다 비가 많이 온 탓에 지난달 전국 13개지점의 최심신적설량 평균도 0.3㎝로 1973년 관측을 시작한 이래 가장 적었다. 최심신적설량은 2시간동안 새로 내려 쌓인 눈의 깊이를 뜻하며 앞선 최소기록은 1998년 0.6㎝였다.

봄과 같은 겨울은 설 연휴가 있는 1월 하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동준 기상청 기후예측과장은 “9일쯤 잠시 영하권 추위가 온 뒤 다시 따뜻해져 평년보다 높은 기온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며 “온화한 날씨는 2월까지 계속되지만 북극에서 남하하는 시베리아 고기압의 영향으로 일시적 한파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겨울비가 내린 7일 오전 강원 화천군 산천어축제장에서 공무원들이 얼음낚시터 행사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을 퍼내고 있다. 화천=연합뉴스
겨울비가 내린 7일 오전 강원 화천군 산천어축제장에서 공무원들이 얼음낚시터 행사장으로 흘러 들어가는 물을 퍼내고 있다. 화천=연합뉴스

눈과 얼음이 사라진 겨울 탓에 동절기 축제를 준비해온 지자체들은 하나같이 울상이다. 이날 오전 강원 화천군 공무원 500여명은 개막(11일)을 나흘 앞둔 산천어축제장에 일제히 투입됐다. 이들은 축구장 26개 넓이에 달하는 행사장 곳곳에 고인 빗물을 퍼내고 모래 주머니를 쌓으며 얼음판 사수에 나섰다. 송민수 화천군 홍보담당은 “현재 낚시터 얼음 두께는 22㎝ 가량으로 아직은 괜찮은 편이지만, 폭우가 며칠 더 내리면 축제에 차질이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화천군은 이날 비로 안전사고가 우려되자 4일부터 사전 개방했던 화천천 상류 외국인전용 낚시터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포근한 날씨로 이미 축제가 1주일 연기된 가운데 비까지 내리자 일정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처럼 이상고온과 겨울장마로 인한 영향은 강원도뿐 아니라 경북과 충북 등 전국의 겨울축제를 위협하고 있다. 당장 강원 평창 송어축제위원회는 이날 얼음낚시 등 행사장 운영을 전면 중단했다. 지난달 28일 개막 이후 30만명이 다녀갈 정도로 흥행을 이어가던 중이라 겨울비의 ‘심술’이 더욱 야속하기만 하다.

오는 18일 개막 예정인 ‘2020안동암산얼음축제’는 현재 개최여부가 불투명하다. 동장군이 좀처럼 찾아오지 않아 얼음 안전도 검사(25㎝ 이상)를 통과할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경북 안동축제관광재단과 축제추진위원회는 8일 축제개최 여부를 결정한다.

충북 제천시 역시 11일부터 열기로 한 ‘겨울왕국페스티벌 시즌2’ 축제에 차질이 빚어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대표 행사인 ‘공어 얼음낚시’가 펼쳐질 의림지의 얼음 두께가 5㎝에 불과한 탓이다. 시 관계자는 “최근 날씨는 평소 충북에서 가장 추워 ‘제베리아(제천+시베리아)’라 불리는 제천의 애칭이 무색할 정도”라고 말했다.

세종=신혜정 기자 arete@hankookilbo.com

화천=박은성 기자 esp7@hankookilbo.com

제천=한덕동 기자 ddhan@hankookilbo.com

안동=이용호기자 lyh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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