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시작된 호주 산불이 해를 넘겨 이어지고 있다.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도 모자라 파랗던 하늘마저 온통 핏빛으로 물들면서 주민들은 매일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다.
‘불지옥’을 연상시키는 붉은 하늘은 노을이 물드는 것과 같은 산란 현상에 의해 나타난다. 햇빛이 대기를 통과하는 사이 푸른빛 입자들은 걸러져 흩어지고 붉은빛만 지상까지 도달하는 원리다.
햇빛은 대기를 통과할 때 공기 분자와 같은 입자와 부딪혀 흩어진다. 이를 산란 현상이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 낮 시간대 하늘이 파랗게 보이는 이유는 공기 중에 떠 있는 미세한 입자가 파장이 짧은 푸른빛을 더 잘 산란시켜 육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을이 질 무렵의 햇빛은 각도상 낮보다 더 긴 거리의 대기를 통과하게 된다. 이때 더 많은 입자와 부딪히므로 산란 현상은 더욱 활발해진다. 파장이 짧은 푸른빛의 경우 지상에 도달하기 전에 이미 너무 많이 부서져 흩어지기 때문에 육안으로 보이지 않게 되고, 상대적으로 파장이 길어 덜 흩어진 붉은 계통의 빛만 하늘을 물들인다.
대기역학 연구자들에 따르면 호주의 경우처럼 붉은 하늘이 대낮에 관찰되는 경우는 대단히 드문 현상이다. 빛의 이동 거리가 짧은 낮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푸른빛이 대부분 흩어지고 붉은빛만 남았기 때문이다. 이는 빛의 산란을 일으키는 미세 입자가 대기 중에 많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에 푸른빛의 산란은 가시광선의 파장보다 작은 입자에 의해 더 활발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적용하면 대규모 화재로 인해 발생한 연기와 재 등 굵은 입자 외에도 초미세먼지보다 작은 ‘초 초미세먼지’급 입자가 공기 중에 가득 퍼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지난 주말 호주 시드니는 미세먼지 농도를 포함한 대기 오염이 세계에서 가장 나쁜 수준에 달하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자연현상이 그렇듯 호주의 하늘이 붉게 물든 정확한 원인을 한마디로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전세계 대형 화재 현장이나 대기 오염이 심각한 지역에서 이와 비슷한 현상이 항상 관찰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손석우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과 교수는 “붉은 하늘의 1차적 원인은 지면 근처에서 발생한 빛의 산란 현상이라고 생각되지만 이를 유일한 원인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정확한 원인을 진단하려면 현지 대기 샘플을 분석하는 등 추가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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