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국회의장’ 초유의 사태
美 “과이도 연임 축하” 야권 지지
‘한 국가 두 대통령’의 극심한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는 베네수엘라에서 독재 정권에 맞서는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국회마저 무너질 위기에 놓였다.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물리력까지 동원해 정적인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의 연임을 막은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의회 쿠데타”라고 규탄하면서 국회 밖에서 과이도 의장을 재선임했다.
5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등 외신에 따르면 1년 임기의 국회의장을 선출하는 이날 과이도 의장과 야권 의원들은 경찰들의 저지로 수도 카라카스에 위치한 국회 건물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과이도 의장은 자신을 가로막은 경찰에게 “베네수엘라 국민을 굶주리게 한 독재정권의 공범”이라고 소리치며 몸싸움을 벌였고, 담장이라도 넘어보려 했으나 결국 국회 진입에 실패했다.
그 사이 친(親) 마두로 성향의 의원들은 국회에 모여 루이스 파라 의원을 새 의장으로 뽑았다. 의결 정족수 미달로 제대로 된 표결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으나 파라 의원은 의장 취임을 강행했고, 마두로 대통령도 “국회가 새 의장을 뽑았다”며 이를 공식화했다. 파라 의장은 한때 야당 소속이었지만 과이도 의장에게 등을 돌린 뒤 최근 정권과 관련된 부패에 연루된 혐의로 당에서 제명당한 인물이다.
여권의 ‘날치기’ 의장 선출에 야권은 거세게 반발했다. ‘여소야대’ 국회가 정상적인 투표를 실시했다면 과이도 의장의 연임이 확실시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몇 시간 뒤 과이도 의장과 야당 의원들은 야권 성향 일간지인 엘나시오날 본사에서 별도의 국회의장 선출 표결을 실시했다. 전체 의석 167명 중 100명이 과이도 의장 연임에 찬성표를 던졌는데, 정권의 탄압을 피해 망명 또는 도피 중인 의원들은 대리인을 통해 투표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과이도 의장은 취임 직후 “독재정권이 또 한 번 실수를 저질렀다”고 비난했다.
두 대통령에 이어 두 국회의장까지 갖게 된 베네수엘라의 정치적 혼란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앞서 과이도 의장은 지난해 1월 5일 1년 임기의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직후 마두로 대통령이 연임에 성공한 2018년 대선은 불법이었다며 임시대통령을 자처했다. 헌법상 대통령 유고 시 국회의장이 권한을 승계하도록 돼 있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미국을 비롯한 50여개국이 곧바로 과이도를 베네수엘라 수반으로 인정하면서 그는 마두로 퇴진 운동의 구심점으로 부상했다.
미국은 이번에도 과이도의 손을 들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이날 “과이도 의장의 재선임을 축하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회의 뜻을 부정하려 한 마두로 정권의 실패한 노력을 비난한다”고 밝혔다. 또 “미국과 57개국은 계속해서 과이도를 적법한 의회 지도자이자 베네수엘라의 정당한 임시 대통령으로 간주한다”고 지지를 재확인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