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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처분한 돼지 많을수록 생계비 덜 받는 게 말이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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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처분한 돼지 많을수록 생계비 덜 받는 게 말이 되나”

입력
2020.01.07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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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3일 경기 연천지역의 한 돼지농장이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지역에 포함되면서 키우던 돼지를 모두 잃은 뒤 3달 넘게 텅텅 비워 있다. 이종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3일 경기 연천지역의 한 돼지농장이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지역에 포함되면서 키우던 돼지를 모두 잃은 뒤 3달 넘게 텅텅 비워 있다. 이종구 기자

“살처분을 하라고 해서 정부 정책에 따랐는데 이제 와서 딴소리를 하고 있다. 돼지를 많이 키워서 대량 살처분 할수록 생계안정지원금을 덜 받는 황당한 제도가 어디 있냐.”

정부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살처분 피해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생계안정지원금이 계속 논란을 빚고 있다. 살처분한 돼지 801~1200마리를 상한액으로 정해놓고, 이 보다 마릿수가 많거나 적으면 지급액이 줄어드는 특이한 구조여서 많은 농가들이 1인 최저생계비(월102만원)에도 미치지 못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6일 경기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ASF 살처분 농가에 생계안정자금을 지급하고 있지만 최근 들어 농가들의 집단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ASF 감염 돼지가 확인돼 모든 돼지를 살처분한 경기 파주, 김포, 연천, 인천 강화 4개 지역 양돈 농가들이 지급 대상이다.

정부는 농가당 월 최대 337만원, 최장 6개월까지 생계비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실상은 달랐다. 정부가 내놓은 ‘ASF 생계안정비용 지급 기준’에 따르면 돼지 살처분 마릿수가 상한액 구간(801~1200마리)일 경우에만 월 337만의 생계비를 지급하게 돼 있다.

살처분 마릿수가 800마리 이하의 경우 200마리가 감소할 때마다 구간별로 상한액의 20%씩 깎인다. 이상한 것은 상한액 구간보다 많아도 지급액이 줄어든다는 점이다. 1201~1400마리 269만원, 1601~1700마리 135만원, 1701마리 이상은 67만원으로 각각 구간별로 20%씩 준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크고 인력이 많은 농장이 생계비는 덜 받는 구조라는 점에서 납득이 안 간다는 게 농가들의 반발 이유다.

[저작권 한국일보]3일 경기 연천지역의 한 돼지농장 모습. 이 농장은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지역에 포함되면서 키우던 돼지를 모두 잃은 뒤 3달 넘게 운영을 못하고 있다. 이종구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3일 경기 연천지역의 한 돼지농장 모습. 이 농장은 지난해 아프리카돼지열병 발생 지역에 포함되면서 키우던 돼지를 모두 잃은 뒤 3달 넘게 운영을 못하고 있다. 이종구 기자

이처럼 적용되다 보니, 연천지역 78개 농가 가운데 절반가량은 가장 낮은 구간인 20%(월67만원)만 수령해야 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60여개 농가는 아예 생계비 신청을 포기했다. 대부분 턱없이 적은 보상비에 동의할 수 없다며 수령을 거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연천지역은 이번 ASF 사태로 돼지 16만4,000여 마리가 살처분되는 등 피해가 가장 컸다.

현장의 분위기는 격앙돼 있다. 오명준 한돈협회 연천지부 사무국장은 “1만마리를 키우는 농장이 1,000마리를 키우는 농장보다 훨씬 덜 받는 이상한 구조”라며 “살처분 당시엔 피해를 100% 보상해줄 것처럼 설득하더니, 이제 와서 나몰라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화군 양돈농가 39곳이 구성한 ‘살처분 보상 관련 비상대책위원회’도 정부의 생계안정자금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이상호 비대위원장은 “정부가 월 337만원을 지급한다고 했지만 일부 농가에게만 해당하는 얘기”라며 “농가가 크면 클수록 인력이나 시설에 들어가는 비용이 커 버티기가 더 힘들다”고 지적했다.

파주와 김포지역 양돈농가도 반발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윤상 전 한돈협회 파주지부장은 “이런 엉터리 보상기준이 어디 있느냐”고 따졌다. 경기도도 “불합리하다”며 정부에 지급기준 개정을 건의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대형 농장에 살처분 보상금과 함께 생계비까지 보상금 지원 혜택이 쏠리는 것을 방지하기 이런 지급기준이 마련된 것으로 안다”며 “양돈협회의 의견도 반영했다”고 밝혔다.

이종구 기자 minjung@hankookilbo.com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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