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섭 광주시장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던 ‘전두환 비서’ 딱지를 떼는 데 실패했다. 이 시장이 전두환 정부 시절 대통령 비서실에서 근무했던 자신의 경력을 두고 “전두환 비서 출신”이라고 지칭하며 광주시정을 꼬집는 글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시민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이 혐의 없음 처분하면서다. 이 시장은 또 같은 이유로 이 시민을 상대로 5,000만원을 지급하라는 내용의 손해배상청구소송도 냈는데, 검찰의 이번 결정이 향후 재판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광주지검은 최근 이 시장이 명예훼손과 모욕, 공직선거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한 고(故) 안병하 치안감 기념사업회 사무총장 A(53)씨에 대해 혐의 없음 처분했다고 6일 밝혔다. 앞서 지난해 8월 이 시장은 A씨를 고소하면서 “A씨가 2017년 4월부터 지난해 6월 말까지 21차례에 걸쳐 페이스북 등에 ‘이 시장은 전두환 비서 출신’라는 허위사실을 게재해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A씨의 혐의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보고 사건을 종결했다. A씨에 대한 형사처벌을 통해 자신에게 덧씌워진 ‘전두환 부역’ 프레임을 깨려던 이 시장의 전략이 물거품이 된 셈이다. 이 시장은 전두환 정권 때 청와대 사정비서실 2부 행정관으로 근무(1985년 12월~1987년 6월)했다. 이를 두고 A씨가 “전두환 비서 출신”이라고 몰아붙이자, 이 시장은 “전두환의 비서를 한 적이 없다”고 발끈했다. 이 시장은 “전두환 정권 시절 재무부에서 서기관(4급)으로 승진하면 파견을 나가야 하는 인사교류 원칙에 따라 청와대 사정비서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것으로, 당시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고도 했다. 이 시장은 A씨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악의적으로 허위사실을 SNS 등을 통해 유포하고 있다고 보고 법적 대응에 나섰다. ‘전두환 비서’ 논란이 더 이상 정치 공세의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하지만 대통령 직무를 보좌하는 행정기관인 대통령 비서실의 하부조직에 속한 공무원들도 넓은 의미에선 ‘대통령의 비서’로 볼 수 있어, A씨를 처벌하는 게 쉽지 않다는 지적도 많았다. 여기에 “시장이 시민을 고소한 건 지나쳤다”는 쓴소리도 이어졌다. 이 때문에 A씨에 대한 검찰의 혐의 없음 처분 이후 이 시장은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에게 재갈을 물리려 했다는 여론의 질타를 걱정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게다가 검찰의 이번 결정으로 되레 ‘전두환 비서’ 이미지만 굳어질 수 있다는 점도 이 시장으로선 부담이다. 결과적으로 이 시장이 제 발등을 찍은 꼴이 됐다.
이 시장이 ‘의문의 1패’를 당하면서 앞으로 A씨를 상대로 진행할 민사소송에선 어떻게 나올지도 관심이 쏠린다. 당장 이 시장이 새로운 증거를 내놓지 못한다면 A씨에 대한 위법성 입증도 어려워 승소를 장담할 수 없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이 시장이 소송을 이어간다면 “이 시장이 애꿎은 시민에게 몽니를 부린다”는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이래 저래 이 시장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안경호 기자 kha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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