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조만간 청와대 비서진을 일부 교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국정 후반기 분위기를 쇄신하려는 취지보다 4ㆍ15 총선 출마를 희망하는 참모들의 길을 터주려는 목적이 강한 듯하다. 문 대통령의 측근인 윤건영 국정기획상황실장을 비롯해 주형철 경제보좌관 등 6, 7명이 될 것으로 점쳐진다. 여권에서는 이들을 포함해 청와대 참모 출신 총선 출마자를 많게는 70명까지 내다보고 있다.
청와대 핵심 참모나 대통령 측근의 총선 출마는 어느 정권이나 있었지만, 이 정도 규모는 이례적이다. 뿌리가 같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 때도 30여명, 직전인 박근혜 대통령 때는 10여명에 그쳤다. 행정관부터 실장급까지 현 정부 청와대 참모 출신의 줄 이은 총선행은 간단히 볼 일이 아니다.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을 총괄하는 청와대 비서진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는 망각한 채 청와대 근무를 총선 출마의 경력 쌓기로 활용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여당에서도 “많아도 너무 많다”며 볼멘 소리가 흘러나오겠는가.
가장 우려스러운 건 문 대통령의 태도다. 청와대 참모 출신들이 너도나도 총선에 나설 수 있는 데에는 대통령의 의중이 깔려 있다고 보여서다. 문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인사들이 여당에 많이 포진하면 좋겠지만 정도가 지나치면 여당을 ‘내 사람’으로 재편해 장악하려는 의도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그간 지역구에서 분투해 선수를 쌓아온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4선),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3선),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재선)의 불출마도 온전한 자의에 의한 결정으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 정치 현실에서 여성 국회의원이 지역구에서 살아 남기란 지극히 어렵다. 20대 국회를 통틀어 여성 의원 중 3선 이상이 11명뿐인 이유가 다른 게 아니다. 이 여성 장관들의 지역구를 두고 벌써부터 더불어민주당에선 전략공천설이 파다하다.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차지가 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청와대는 국회의원 양성소가 아니다. 여당 또한 청와대 출장소가 아니다. 혹여 문 대통령이 국정 후반 권력 누수를 막고자 참모 출신들의 총선 출마를 허용하는 것이라면 생각을 바꿔야 한다. 자칫 대통령과 청와대의 권위를 스스로 폄훼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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