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군부 실세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총사령관이 미군 공격으로 사망한 사건이 중동에서 7,000여㎞ 떨어진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은 대외관계에 있어 전통적으로 한반도보다 중동 지역 안보를 우선시한다. 때문에 미국은 일촉즉발의 중동 이외 지역에선 당분간 현상유지 전략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교착 국면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란 사태가 한반도 정세와 얽힌 대목은 솔레이마니 사령관 사살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이뤄졌다는 사실이다. 협상가를 자처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공격 명령을 내리고 전면전을 시작한 만큼, 미국은 이란을 비롯한 중동 지역에 외교ㆍ국방 역량을 쏟아 부을 수밖에 없다. 중동 전문가인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3일 “셰일가스 등의 개발로 유가 변수가 약화하긴 했지만, 중동은 여전히 미국이 대외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지역”이라며 “자칫하면 이라크를 전장으로 하는 세기의 사건으로 번질 수 있는 상황이라 미국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북미 비핵화 협상이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해법을 모색하는 ‘톱다운(하향) 방식’으로 진행돼 온 것도 변수다. 트럼프의 관심이 온통 중동으로 쏠리면 북한 비핵화는 후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중동 지역에서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미국은 아시아 지역을 현상을 유지하는 차원에서 관리해 왔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 교착 국면이 길어지면,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고강도 무력시위를 감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원곤 교수는 “북한이 강력한 도발을 해 올 수 있는 만큼, 북측이 레드라인을 넘지 않도록 통제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솔레이마니 사살이 김 위원장에게 압박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란이 ‘레드라인’을 넘자 마자 미국이 공습에 나선 것을 김 위원장이 ‘경고 신호’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이 2일(현지시간) 미 MSNBC방송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의 다음 행동에 따라 (한미 연합군사훈련 재개 여부를) 살펴볼 일”이라면서 “앞으로 수 개월간 지상에서 펼쳐질 상황 전개를 지켜보겠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에 따라 김 위원장은 자력갱생 기조를 중심으로 내부 체제 결속에 집중하면서 미ㆍ이란 사태 추이를 지켜 보며 다음 선택지를 고를 전망이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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