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망 기업을 인수해 장기 보유하면서 수십년간 기록적인 수익을 거둬 온‘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의 투자흥행 실적이 주춤하고 있다. 지난해 뉴욕 증시가 30% 가까이 급등하는 사이, 버핏의 투자회사 버크셔해서웨이(이하 버크셔) 주가는 11% 상승에 그쳤다. 최근 3년간 일명 ‘코끼리 사냥’으로 불리는 대형 기업 인수 없이 막대한 현금을 쌓고만 있는 그의 모습을 두고, 일각에서는 “버핏이 증시 고평가를 주시하고 있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쌓아둔 현금 150조원
지난 2일 미국 CNBC 등은 버크셔의 주가가 지난해 11% 상승에 그쳐,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 지수의 연간 상승률(29%)을 크게 밑돌았다고 전했다. 지난 10년 간도 버크셔의 주가 상승률은 S&P 500 지수에 미달했지만, 지난해 수익률 격차는 2009년 이후 가장 컸다고 매체들은 전했다.
투자자들은 버핏이 이렇다 할 투자성적을 내지 못한 이유로 최근 강세장에도 불구하고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점을 꼽고 있다. 버핏은 코끼리 사냥으로 불리는 대형 인수ㆍ합병(M&A)을 선호하는데, 2016년 항공부품업체 프리시전 인수 이후엔 대형 M&A 사례가 없다. 이 때문에 작년 3분기 기준으로 버크셔가 보유한 현금 또는 즉시 현금화 가능자산은 1,282억달러(약 150조원)에 이르렀다.
인수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버핏이 인수 움직임을 보일 때마다 사모펀드가 대규모 자금으로 경쟁에 나서는 현상이 부담이다. 지난해 11월 버크셔는 소프트웨어 유통사 테크데이터 인수에 50억달러를 제시했지만, 사모펀드 아폴로글로벌매니지먼트가 51억4,000만달러를 제시하자 인수를 포기했다.
◇다음 위기 기다리는 버핏?
시장에선 버핏이 손에 쥔 1,000억달러대 실탄의 향방을 주목하고 있다. 버핏이 꾸준히 현금 비중을 늘리는 데 아직 마땅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버크셔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불만을 제기하기도 했다. 수십년간 버크셔에 투자한 웨지우드파트너스의 데이비드 롤프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지난 10월 고객 서한에서 “버크셔가 소극적인 투자로 강세장의 기회를 놓쳤다”고 주장하며 보유하던 버크셔 주식을 처분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CNBC는 버크셔가 인수전에 소극적인 건, 최근 증시가 과열 상태라는 인식 때문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 버핏은 지난해 2월 연례서한에서 “기업을 인수할 의지는 있지만, 장기적 관점에서 준수한 기업의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토로한 바 있다.
경기 비관론자들 사이에선 버핏이 다음 위기를 기다리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버핏은 과거에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골드만삭스나 뱅크오브아메리카 등 대형 은행주 지분을 늘렸고, 이는 현재 막대한 배당수익으로 돌아오고 있다. 시장이 흔들리면, 가격이 떨어진 우량 기업을 쓸어담는 데 버크셔가 쌓아 놓은 막대한 현금이 즉각 동원될 거란 전망이다.
◇‘헤지펀드 대부’도 “현 성장세 지속 불가능”
유명 투자자 가운데 지난해 웃지 못한 건 버핏뿐이 아니다.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립자 레이 달리오도 성과가 좋지 않았다. 브리지워터의 핵심 펀드인 ‘퓨어 알파’는 지난해 3분기까지 약 2%의 손실을 입었다. 금융시장이 혼란스러웠던 2018년 14.6% 수익을 거둔 것과 대조적이다. 명확한 이유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세계 경기가 꺾일 것을 예상해 주식 매도권(풋옵션) 등에 베팅했다가 증시가 오르자 손실을 봤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실제 달리오는 지난해 내내 “과잉 유동성으로 금융 안정이 훼손되고 있다”고 꾸준히 경고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세상이 미쳤고 시스템이 망가졌다’며 “현재의 성장세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 글에서 “중앙은행의 유동성 공급이 지나쳐 물가와 성장은 개선되지 않는데 금융 자산 가격만 오르고 있다. 막대한 자금이 수익성 없는 기업에 흘러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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