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평평한 곳 아무데나 세워두고 그 앞에 열 손가락을 가지런히 놓는다. 키보드는 보이지 않지만, 타이핑할 준비는 완료됐다. 메모장을 켠 뒤 아무것도 없는 테이블 위에서 타자를 치자, 정확히 내가 누르고자 하는 글자가 화면에 입력되기 시작한다.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해 글씨를 입력할 때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타이핑이 가능한 이 ‘귀신 같은’ 키보드는 삼성전자 사내벤처 프로그램 ‘C랩 인사이드’ 5곳 중 하나인 ‘셀피타입(Selfie Type)’이 개발한 가상 키보드다. 매번 휴대용 블루투스 키보드를 가지고 다니자니 거추장스럽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서 편집이나 메일 작성을 스마트폰 작은 화면으로 해내기도 어려웠던 불편을 해결하기 위해 개발됐다. 셀피타입은 오는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하는 세계 최대 전자ㆍIT 전시회 ‘CES 2020’에서 이 제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원리는 간단하다. 스마트폰 전면에 위치한 ‘셀피(셀프 카메라)’ 카메라와 인공지능(AI) 알고리즘이 손가락 위치를 파악하고 손 끝 좌표를 인식해, 이를 키보드 배열과 맞춰 어떤 글자를 누르려는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심도를 파악할 수 있는 고성능 카메라 기능이 필요할 것 같지만, 생각 외로 사물의 원근을 파악하는 ToF(비행시간) 센서나 SL(구조인식) 센서 등이 필요하진 않다. 전면 카메라가 달려있는 대부분의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노트북 등 다양한 휴대용 기기로 확장이 쉽다는 뜻이다.
기존에도 책상 위를 키보드 치듯 두드려 글자를 입력하는 가상 키보드가 있었지만 원리가 다르다. 기존 제품들은 레이저를 쏴 책상 위에 가상의 키보드를 보이게 하고, 여기에 손가락을 대면 적외선이 위치를 감지해 어떤 글자를 눌렀는지를 해석하는 방식이었다. 레이저와 적외선을 쏘고 입력 정보를 해석하는 장치가 따로 필요하고, 이는 스마트폰 또는 PC와 블루투스로 연결돼야 했다. 휴대성은 낮고, 정확한 위치를 짚어야 하는 만큼 오타율은 높을 수밖에 없는 방식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셀피타입이 개발한 가상 키보드는 키보드 위치가 아닌 손가락 움직임을 인식함으로써 이를 극복했다. 특히 AI가 적용된 만큼 개인별 타이핑 습관을 분석해 입력 정확성을 꾸준히 높일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현재는 영어만 지원되지만, 앞으로 다른 언어로도 확대될 예정이다.
셀피타입 측은 2일 삼성전자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CES에서 여러 사업자를 만나 다양한 피드백을 들어보고 싶다”며 “더 나은 제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할 것”이라는 각오를 보였다.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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