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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조금의 차이도 인정하지 못하는 사회

입력
2020.01.03 18:00
수정
2020.01.03 18: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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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법 ‘기권’ 금태섭, 與 지지층에 뭇매

진영 논리, 편가르기에 의회민주주의 질식

다른 목소리 용납하지 않는 것은 전체주의

(왼쪽 사진)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조국수호·검찰개혁·공수처 설치를 위한 서초달빛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오른쪽 사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 앞서 단상에 모여 공수처 법안 폐기를 요구하며, 문희상 국회의장 사퇴를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
(왼쪽 사진) 지난해 12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 앞에서 열린 '조국수호·검찰개혁·공수처 설치를 위한 서초달빛집회'에서 참가자들이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뉴스1(오른쪽 사진)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12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74회 국회(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 앞서 단상에 모여 공수처 법안 폐기를 요구하며, 문희상 국회의장 사퇴를 외치고 있다. 한국일보

검사 출신의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법안 국회 본회의 표결에서 여당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기권표를 던졌다는 얘기를 듣고 참 그답다는 생각을 했다. 금태섭은 조국 법무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도 대학원 지도교수로 인연이 있던 후보자의 언행 불일치와 공감 능력 부족에 ‘송곳’ 질문을 던져 반향을 일으켰다. “국회의원은 유권자 대표다. 여당 의원이라도 유권자가 궁금해하는 질의는 표현할 의무가 있다.” 그가 남겼던 변이다.

이처럼 금태섭은 개혁 지향성과 의회주의자의 합리성을 두루 갖췄다는 평을 듣는다. 검사 출신이지만 친정인 검찰을 대변한 적도 없다. 오히려 정권 초 적폐청산을 검찰 특수부에 맡기지 말자는 주장을 폈다. 검찰의 권한과 몸집을 줄이고 검찰권이 미치는 영역을 최소화하는 것이 검찰 개혁으로 가는 더 확실하고 빠른 길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공수처가 무소불위 검찰 권력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임을 금태섭도 모르지 않는다. 공수처라는 제3의 수사기관 설치가 검찰 개혁에 더 효율적이냐는 판단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소신 투표가 불러온 후폭풍은 청문회 때와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다.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은 “당론을 어긴 금태섭을 징계하지 않으면 민주당은 콩가루 정당이 될 것” “민주당은 절대 이런 회색분자에게 공천 주지 말라”는 등 징계 요청 글로 도배됐다. 같은 목적지를 향하되 가는 경로만 달랐을 뿐인데 ‘검찰 개혁의 걸림돌’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것이다.

비슷한 일은 공수처법을 공개적으로 반대한 범여권 호남 의원들에게도 일어났다. ‘공수처 법안 반대하는 호남 매국노’라는 제목 아래 의원들 사진과 지역구명을 적고 ‘이런 매국XX들 뽑지 말고 청산하자’는 선동 글이 SNS에 급속히 확산됐다. 그 중 압권은 친문 지지자들의 항의 전화와 문자 폭탄에 시달린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의 하소연이다. 지인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그는 2011년 공수처법안을 대표 발의할 정도로 공수처 찬성론자였다는 점을 강조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번에 반대로 돌아선 건 공수처가 검경의 수사 정보를 사전에 보고받는 조항이 추가돼 권력을 향한 수사마저 통제할 위험이 있다고 봤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항변이다. “내 편은 절대선이고 네 편은 절대악으로 보는 ‘선악의 이분법’”이라고 그는 한탄했다.

홍위병을 연상케 하는 극단적 지지층 문제는 보수 진영도 예외가 아니다. 태극기 집회를 이끄는 한 극우 단체가 얼마 전 몇몇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탄핵은 잘못된 결정’이라는 고해성사를 유튜브에 올리라는 요구를 은밀히 했다고 한다. 요구를 안 들어주면 태극기 부대가 총선 때 지역구로 몰려가 떨어뜨릴 거라고 협박도 곁들였다. 당장은 거절했지만 박빙의 차로 승부가 결정되는 선거 때가 다가오면 의원들이 어떻게 변할지 궁금하다고 이 얘기를 들려준 한 의원은 걱정했다.

지난해 한국 정치는 역대 최악이었다. 극한 대립으로 사회가 둘로 쪼개졌지만 의회 정치는 실종하고 그 자리를 거리의 정치가 대체했다. 극단적 대립은 다른 목소리는 조금도 용납하지 않는 전체주의 분위기로 흘렀다. 공수처 반대 소신을 지켰다가 ‘당론을 거스른 반역자’로 몰린 금태섭, ‘4+1’ 합의에 제동을 걸었다가 ‘매국X’가 된 김동철, 낙선이 두려워 탄핵 입장 번복을 고민해야 하는 한국당 의원들의 사례는 극단적 진영 논리와 편 가르기로 의회 민주주의가 점차 질식해가고 있다는 증거다.

올해는 총선이 열리는 해다. 여당은 정권 교체를 넘어 사회적 패권 교체를 이뤄내겠다고, 야당은 정권의 오만과 독선을 심판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지난해 조국 사태와 패스트트랙 정국보다 더 극심한 국론 분열이 올까 걱정이다. 해법은 있다. 광장 정치에서 의회 정치로 민주주의의 품격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선거에서 조직 논리와 정파적 논리에 갇혀 진영 싸움만 되풀이한 세력은 과감히 퇴출시켜야 한다. 그 빈자리에 더 많은 ‘금태섭’들이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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