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2일(현지시간) 청소년 흡연을 막기 위해 전자담배에 대한 규제책을 꺼내 들었다. 니코틴 액상이 미리 채워져 있는 카트리지 형태의 가향(flavored) 전자담배 가운데 담배향이나 박하향을 제외한 나머지 제품의 판매를 전부 금지하기로 한 것이다. 미성년자들에게 특히 인기가 높았던 과일향이나 캔디향, 민트향 등이 규제대상에 포함됐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이날 홈페이지에 게재한 보도자료에서 “청소년 흡연 예방을 위해 카트리지 기반 가향 전자담배 가운데 담배향과 박하향(menthol) 이외 제품의 판매를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FDA는 향후 30일간 유예기간을 둔 뒤 허가되지 않은 카트리지 기반 전자담배의 제조ㆍ유통ㆍ판매 행위를 제재하기로 했다.
이번 조치는 전자담배 관련 사망자가 잇따르는 가운데 미성년자의 전자담배 흡입과 피해를 줄이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사용자가 액상 니코틴을 직접 혼합해야 하는 ‘오픈탱크’ 기반 가향 전자담배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고, 사용하기 쉽고 숨기기도 쉬운 카트리지 기반 가향 전자담배만 규제 대상에 넣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FDA 통계에 따르면 500만명 이상의 미국 중ㆍ고등학생이 현재 전자담배를 흡연하고 있고, 이들은 주로 카트리지 기반 전자담배를 이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오픈탱크형은 주로 청소년들의 출입이 금지된 전자담배 전용 매장에서 판매되지만, 카트리지형 가향 전자담배는 그동안 주로 주유소나 편의점 등에서 손쉽게 구매가 가능했다.
알렉스 에이자 미 보건복지부(HHS) 장관은 이날 성명에서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제품에 (규제) 우선순위를 둠으로써 청소년들이 니코틴 중독에 빠지지 않게 하고, 가연성 담배(전통 담배)를 사용하는 성인들의 잠재적인 출구로서 전자담배를 유지하는 공중보건의 균형을 이루려고 한다”고 밝혔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에 따르면 미국 전역에서 전자담배 흡연과 관련된 것으로 의심되는 호흡기 질환으로 현재까지 55명이 사망하고 2,500명 이상이 병원 치료를 받았다. AP통신은 이번 조치에 대해 전자담배 규제와 관련한 “현재까지 가장 큰 조치”라면서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개월 전 밝혔던 가향 담배 ‘전면 판매금지’ 계획에서 크게 후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도 “이번 타협은 전자담배 업계의 격렬한 로비를 보여준다”면서 ‘공약 후퇴’라고 평가했다.
이와 관련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앞서 1일 소식통을 인용해 FDA의 결정을 보도하면서 △미성년자의 전자담배 흡연 증가에 대응하길 원하는 트럼프 행정부와 △업계에 미칠 경제적 영향을 우려하는 이들 △재선을 앞둔 트럼프 대통령에게 미칠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는 이들 사이에서 ‘타협’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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