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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훈이 만난 사람] “14년간 65회 식물탐사 디카 4대 바꿔 5만2,000장 찍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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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훈이 만난 사람] “14년간 65회 식물탐사 디카 4대 바꿔 5만2,000장 찍었죠”

입력
2020.01.03 08:36
수정
2020.01.05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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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원 ‘울릉도 독도 식물도감’ 한ㆍ영판 저자

2년 전 국문판…지난해 경북도에서 영문판 발간

472종 수록…특산식물 38종 “독도=우리 땅” 증거

도 추진 울릉도 세계자연유산 등재 길라잡이 될 듯

“발견한 것은 전체 종의 70%…나머지 찾는데 혼신”

높다란 벽면에 새겨진 ‘세명고교’ 넉자가 보이는 경북 포항 세명고 본관 앞에서 ‘울릉도 독도 식물도감’ 한영판의 저자 김태원 선생이 두 책을 받쳐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높다란 벽면에 새겨진 ‘세명고교’ 넉자가 보이는 경북 포항 세명고 본관 앞에서 ‘울릉도 독도 식물도감’ 한영판의 저자 김태원 선생이 두 책을 받쳐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사진은 학명에 ‘타케시마에 있는’이란 뜻의 takesimensis 등이 들어있는 울릉도 특산식물 12종. 순번대로 섬포아풀, 섬단풍나무, 섬남성, 섬나무딸기, 울릉장구채, 섬현삼, 섬초롱꽃, 섬장대, 섬벚나무, 섬바디, 섬기린초, 섬광대수염. 김태원 포항 세명고 교사 제공.
사진은 학명에 ‘타케시마에 있는’이란 뜻의 takesimensis 등이 들어있는 울릉도 특산식물 12종. 순번대로 섬포아풀, 섬단풍나무, 섬남성, 섬나무딸기, 울릉장구채, 섬현삼, 섬초롱꽃, 섬장대, 섬벚나무, 섬바디, 섬기린초, 섬광대수염. 김태원 포항 세명고 교사 제공.

12월 중순인데도 막 노오란 개나리꽃이 망울을 터뜨릴 것은 같은 포근한 날 ‘울릉도 독도 식물도감’ 한‧영판의 저자 김태원(59) 선생을 만났다. 그는 경북 포항 세명고 생물교사로 31년째 재직 중이다.

학교 본관 로비서 만난 그에게 사진부터 찍자고 했다. 겨울 해는 엉금엉금 지는 듯해도 돌아서면 서산머리에 엉큼성큼 다가가 나불거리기 십상인 터. 높다란 벽면에 새겨진 ‘세명고교’ 넉자가 보이도록 서서 두 책을 받쳐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이 꼭 해바라기 같았다.

그는 우리 식물에 ‘환장한’ 사내다. 울릉도 독도를 14년간 65차례 방문해서는 디지털카메라 4대를 교체해가며 5만2,000여장의 사진을 찍었다. 2년 전 울릉도 특산식물 38종을 포함, 총 472종을 담은 552쪽짜리 ‘울릉도 독도 식물도감’ 국문판을 출판한 후 1년여 만인 지난달 12일 영문판도 출판됐다. 영문판은 이 책의 작품성을 인정한 경북도가 판권을 사들여 특산식물은 1페이지에 2장씩, 나머지 식물은 1페이지에 2종씩 대표사진 1장씩만 소개했다. 페이지수는 336쪽으로 대폭 줄었다. 대신 고급 양장본으로 만들고 판형을 키웠다. 영문판은 해외공관에 배부될 예정이다.

김 선생은 “65차례 탐사 중 5차례는 제자들과 방문해 그 의미가 남다르다”며 “마침 오늘(인터뷰한 날) 탐사를 함께했던 제자 전현진이가 재수를 해 동국대 한의대에 최종 합격했다”는 기쁜 소식을 받았다고 했다. 전현진(19) 양은 3년 전 ‘울릉도 독도 식물 이야기’를 주제로 전국 과학동아리발표대회에 참가해 금상을 거머쥐었다. 김 선생은 이 금상을 “(진지하게) 최우수상에 버금가는 금상”이라며 “아직도 그 감흥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는 2006년부터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에서 식물부문 동정위원으로, 2013년부터는 국립생물자원관 식물연구 및 조사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울릉바늘꽃. 최초 발견자는 김태원 선생이다. 그는 2014년 큰바늘꽃 신군락지를 발견했다. 당시엔 단순히 큰바늘꽃으로 인지해 한 신문에 투고했다. 국립수목원과 고려대는 이를 토대로 연구해 2017년 신종 ‘울릉바늘꽃’을 학계에 발표했다. 암술대가 큰바늘꽃과 (돌)바늘꽃의 중간형을 띠어서 신종(교잡종)으로 발표한 것이다. 김태원 포항 세명고 교사 제공.
울릉바늘꽃. 최초 발견자는 김태원 선생이다. 그는 2014년 큰바늘꽃 신군락지를 발견했다. 당시엔 단순히 큰바늘꽃으로 인지해 한 신문에 투고했다. 국립수목원과 고려대는 이를 토대로 연구해 2017년 신종 ‘울릉바늘꽃’을 학계에 발표했다. 암술대가 큰바늘꽃과 (돌)바늘꽃의 중간형을 띠어서 신종(교잡종)으로 발표한 것이다. 김태원 포항 세명고 교사 제공.

-이전에도 야생화 책을 냈나.

“‘울릉도 독도 식물도감’ 영문판까지 이번이 네 번째 책이다. 2013년에 ‘꽃따라 벗따라 들꽃산책’이란 책을 냈고, 2016년에는 공동저서 ‘오늘 무슨 꽃 보러 갈까?’를 펴냈다.”

-왜 우리 꽃에 빠졌나.

“2003년 우연한 기회에 ‘인디카’라는 사이트를 보고 딴 세상이라고 무릎을 탁 쳤다. ‘똑딱이 카메라’로 식물을 찍어 현상을 해서 개인적으로 공부하던 때 디지털카메라 세상은 유레카였다. 당시 인디카 회원들은 서울 안산 쪽에서 주로 활동했다. ‘출사간다’는 공지가 뜨면 포항에서 밤 12시 버스를 타고 안산으로 갔다. 포항에서 안산까지 5시간 정도 걸리는데, 안산에 도착하면 근처 목욕탕에서 샤워하고 간단히 아침을 먹고 미팅장소로 가면 시간이 딱 맞았다. 거기서 경북회원도 만났는데 후에 따로 모여서 미친 듯이 다녔다. 우리가 모인다는 소식을 전하면 다른 지방에서 우리 쪽으로 모였다.”

김 선생은 ‘울릉도 독도 식물도감’ 머리말에 ‘2003년 식물 공부에 입문한 뒤 풀 나무와 함께하는 세월이 16년에 접어들었습니다. 매일 다니던 길가의 나무는 하늘을 가릴 정도로 자랐고, 40대 초반이던 저는 어느덧 50대 후반이 되었습니다’라고 노작임을 내비쳤다.

-포항에서 울릉도 독도를 오가는 일은 또 다른 열정이다.

“사실 우리 학교가 포항-울릉도 노선을 소유했던 대아그룹 재단이다. 지금은 노선을 팔아 배편을 쉽게 구할 수 없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황인찬 대아그룹 회장님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 황 회장께 도와달라고 했더니 마음껏 해보라고 했다. 최근 대아그룹은 경북 울진의 후포항에서 울릉도로 가는 노선을 새로 확보했다.”

-어떻게 작업했나.

“14년간 카메라를 4대 바꿨다. 디지털카메라는 수명이 3년이다. 한 번 나가면 500~1,000장을 찍었는데 3년 찍으니 매번 고장이 났다.”

-한 번 가면 며칠씩 작업했나.

“학교에 매여 있으니 대개 토요일, 일요일 1박 2일로 갔고, 방학 땐 3박 4일로 다녔다. 탐사를 다녀오면 이번에는 이쪽으로 갔으니까 다음엔 저쪽으로 가야지 하는 코스가 항상 머릿속으로 그러졌다.”

-한 번에 500~1,000장을 찍는다고 했는데 분류 작업도 만만치 않았겠다.

“분류해 나가는데 진이 다 빠졌다. 사진만 분류하는 게 아니라 월별로 모으고, 비슷한 식물끼리 묶고, 같은 과 식물로 세분하는 일은 그야말로 인내와 고난의 시간이다.”

-목차 구성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식물도감 범례에 따랐지만 경북대 박재홍 교수의 자문을 많이 받았다. 박 교수는 현재 울릉도 세계자연유산 등재 총괄책임을 맡고 있다. ‘울릉도 독도 식물도감’ 감수의 글도 기꺼이 써주셨다.”

박재홍 경북대 교수는 감수의 글에서 이렇게 밝혔다.

‘식물도감 발행은 전문가 영역일 수도 있는데, 고등학교 일선 교사가 학생들과 함께 긴 시간을 투자해서 울릉도 독도 식물을 탐사하고 도감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경외감마저 듭니다.’

-식물 관심 지역이 울릉도 독도로 기운 것 같다.

“아마 이 책은 울릉도를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하는 것에도 활용되지 싶다. 만약 올해 도감을 출간했다면 종수가 10개 더 늘었을 것이다. 올해 10종을 더 발견했다. 통상 울릉도 독도 자생식물을 600여종으로 본다. 이제 60~70%정도 발견한 것이다.”

-후속작업은.

“나머지 30% 자생식물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걱정이 있다.”

-뭔가.

“최근 몇 년 사이 귀화식물(다른 나라에서 들어온 식물)이 부쩍 늘었다. 일주도로 등 각종 공사로 장비가 들어오면서 도로변에 서식하기 시작했다.”

-생태계 파괴가 일어나고 있다는 건가.

“파괴까지는 아니더라도 척박한 토양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별로 좋은 현상은 아니다. 개체수가 많아지면 산속으로 영역을 넓혀갈 수 있다.”

-울릉도 독도 식물은 선생에게 어떤 의미인가.

“언제인지 연도는 기억이 없는데 날짜는 6월 7일이었다. 평일인데 휴일이 끼어 2박 3일로 탐사를 가 하루는 이전과 다른 코스를 타다 어마어마한 만병초 군락지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말로만 듣던 홍만병초 군락지도 있었다. 소위 뿅가 하루 종일 거기서 뒹굴고 놀았다.”

-울릉도 독도는 민감한 주제다.

“사실 외부 강의를 나가면 늘상 하는 얘기가 있다. 독도가 왜 한국 땅이냐. 울릉도 독도 식물을 보면 한국 땅이란 게 확실해진다는 얘기다. 섬나무딸기(Rubus takesimensis Nakai), 섬남성(Arisaema takesimense Nakai), 섬단풍나무(Acer takesimense Nakai), 울릉장구채(Silene takeshimensis Nakai) 등은 모두 전 세계적으로 울릉도에만 서식하는 울릉도 특산식물이다. 이 식물들 학명에는 ‘타케시마에 있는’이란 뜻의 takeshimensis 등이 붙어있다. 이 식물들에 학명이 달린 것은 1918년 이후인데 그때 일제는 울릉도를 다케시마라고 인지하고 있었다. 현재 독도를 다케시마라고 부르며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은 논리적 모순에 빠지게 된다.”

김태원 선생은 ‘울릉도 독도 식물도감’ 국문판 359쪽에 실린 땅빈대는 “교잡종일 수 있다”며 “이 놈을 관찰해 봐야 한다”고 했다. 원래 땅빈대잎에는 무늬가 없는데, 수록된 사진 속에는 갈색 무늬가 있다. 김 선생은 “울릉도에 자생하는 이 땅빈대는 개발로 인해 식물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김태원 선생은 ‘울릉도 독도 식물도감’ 국문판 359쪽에 실린 땅빈대는 “교잡종일 수 있다”며 “이 놈을 관찰해 봐야 한다”고 했다. 원래 땅빈대잎에는 무늬가 없는데, 수록된 사진 속에는 갈색 무늬가 있다. 김 선생은 “울릉도에 자생하는 이 땅빈대는 개발로 인해 식물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다케시마의 날은 1905년 2월 22일 독도를 일본 제국 시마네 현으로 편입 고시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2005년 3월 16일에 시마네 현이 지정한 날이다. 동북아역사재단에 따르면 1905년부터 일본인들은 독도를 현재 명칭인 다케시마로 부르고 있으며 이는 ‘대나무 섬’을 의미한다. 공식, 비공식을 막론한 어떤 일본 측 자료도 바위투성이 섬 독도가 왜 대나무 섬으로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설명을 제공하지 못하고 있다. 1905년 이전까지는 독도와 울릉도는 각각 마츠시마(송도)와 다케시마(죽도)로 불렸다. 이렇게 불린 것은 1667년부터였다.

김 선생은 울릉도 특산식물에서 일본의 자가당착을 포착했다.

심지훈 한국콘텐츠연구원 총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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