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골든글로브상 시작으로 1ㆍ2월에 시상식만 20여개 몰려
수상 이어지면 내달 아카데미상 유리… 여론 띄워 대세론까지
2일 영화계에 따르면 영화 ‘기생충’의 제작사 바른손 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는 이날 미국으로 출국해 3주 가량 머문다. 곽 대표는 미국 체류 중 5일(현지시간)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리는 제77회 골든글로브상 등 여러 시상식과 파티 등에 참석한다. 곽 대표뿐 아니라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 출연배우 송강호 조여정 이정은 등도 미국을 방문해 시상식에 동참한다. ‘기생충’은 골든글로브상 3개 부문(감독상 각본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선정되는 등 여러 여러 영화상 후보에 올라 있다.
◇‘시상식의 계절’ 개막
곽 대표 등 ‘기생충’ 관계자들이 잇달아 미국을 방문하는 표면적인 이유는 수상이다. 하지만 방미의 실제 목표는 할리우드 인사이더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다. 여러 시상식 등을 통해 ‘기생충’을 할리우드 관계자들에게 새삼스레 각인시키면서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아카데미상) 수상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고 한다.
할리우드에서 1, 2월은 본격적인 ‘시상식의 계절(Awards Season)’이다. 골든글로브상을 시작으로 다음달 9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열릴 때까지 영화 관련 시상식 20개 가량이 치러진다. 아카데미상의 유력 후보들은 이들 시상식을 통해 자신들의 존재를 널리 알리려 한다. 수상은 더할 나위 없는 홍보 수단이다. ‘대세론’을 조성할 수 있어서다. 미국영화배우조합 등 시상식을 주최하는 단체의 회원들이 아카데미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인 경우가 많다.
미국 여론조사기관 파이브서티에잇의 조사에 따르면 2017년 1월초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 유력 후보 1위는 내털리 포트먼(‘재키’)이었다. 하지만 시상식의 계절을 거치며 경쟁자 에마 스톤(‘라라랜드’)의 수상 가능성이 점차 커져갔고, 결국 스톤이 오스카 트로피를 품었다. 스톤은 골든글로브상(뮤지컬코미디 부문)과 미국영화배우조합상, 영국아카데미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잇달아 받으며 대세몰이에 성공했다.
◇기생충, 오스카를 향해 달려라
시상식의 계절이 열리면서 ‘기생충’ 투자배급사 CJ엔터테인먼트 해외배급팀의 업무량도 부쩍 늘었다. 미국 영화단체들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 등을 통해 ‘기생충’ 알리기에 노력하고 있다. 해외배급팀 직원 10명이 ‘기생충’ 업무에 매달려 있다. CJ엔터테인먼트는 ‘기생충’의 북미 시장 배급사인 네온과 아카데미상 관련 홍보 업무 등을 함께 하고 있다. 윤인호 CJ엔터테인먼트 홍보팀장은 “칸영화제가 단기전이라면 아카데미상 경쟁은 장기전이라 더 힘이 드는 것 같다”며 “마치 정치판 선거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경쟁 과정이 길고 체계화돼 있다”고 말했다.
매년 1월이 되면 할리우드 영화인들에겐 각종 영화 홍보물이 담긴 우편물이 쏟아진다. 연말연시 할리우드리포터와 버라이어티 등 연예전문지에는 ‘우리 영화에 투표를 고려해주십시오’라는 읍소 문구가 담긴 광고들이 넘쳐난다. AMPAS 회원 6,000여명 가량을 향한 구애다. 아카데미상은 분과별로 후보작을 선정한 후 회원 전원이 부문 별로 투표해 수상자(작)을 선정한다. 아무리 업계 ‘인싸’ 영화인들이지만 보는 영화 수에 한계가 있다. 후보작들이 회원들 눈에 들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이유다.
◇홍보비만 1편당 평균 1,500만 달러
미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아카데미상 경쟁을 위해 쏟아 부은 홍보비는 후보작 1편 당 1,500만 달러였다. 중소 규모 영화사들도 500만 달러에서 1,000만 달러를 썼다. 국내 영화계 한 관계자는 “CJ엔터테인먼트와 네온도 오스카 레이스를 위해 평균치의 홍보비를 쓰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아카데미상에 목매는 건 오스카 효과를 아직 무시할 수 없어서다. 아카데미상 수상에 따라 제작사와 감독, 배우, 스태프의 영화계 평가가 달라지고, 몸값이 뛴다. 버라이어티에 따르면 동영상온라인서비스(OTT)업체인 넷플릭스는 지난해 ‘로마’의 작품상 수상을 목표로 2,500만 달러를 썼다. 6,000만 달러를 쏟았다는 소문도 할리우드에 나돈다. ‘로마’의 제작비는 1,500만 달러(추정)다. 테크기업으로 출발한 넷플릭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로 인증 받기 위해 아카데미상 최고상이 필요하다. 올해는 ‘아이리시맨’과 ‘결혼 이야기’가 작품상 등 주요 부문 수상에 도전한다.
김효정 영화평론가는 “영화사들 입장에선 글로벌 마케팅용으로 아카데미상만한 것이 없다”며 “넷플릭스는 OTT회사라는 인식을 지우기 위해 많은 돈을 들였고, 최근엔 인디 영화사들이 오스카를 마케팅에 활용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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