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지 터키에서 조종사 4명 등 7명 체포
레바논 “인터폴 적색수배 요청 접수” 수사 착수
일본 검찰과 경찰이 카를로스 곤 전 닛산ㆍ르노자동차 회장의 해외 도주 과정에 조력자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다. 보석 상태에서 감시를 받던 그가 혼자서 헐리우드 영화 뺨칠 정도의 기발한 방법으로 출국해서 레바논에 도착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란 판단에서다. 하지만 일본의 수사ㆍ사법제도가 국제적 망신거리가 된 상황에서 ‘뒷북 수사’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도쿄지검은 2일 출입국관리법 위반 등의 혐의로 곤 전 회장의 도쿄 자택을 수색했다. 경찰도 자택 주변 방범카메라 영상 분석에 착수했다. 당초 다국적자인 곤 전 회장의 프랑스ㆍ레바논ㆍ브라질 여권은 지난해 4월 보석 당시 변호인단에서 간수하고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날 곤 전 회장이 프랑스 여권 1개를 더 갖고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일본 출입국관리청 데이터베이스에는 출국 기록이 없지만, 레바논 정부는 “곤 전 회장이 본인 명의의 프랑스 여권을 사용했다”고 밝힌 바 있다.
NHK 등 일본 언론들은 “곤 전 회장이 법원의 허가로 프랑스 여권 1개를 휴대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이 프랑스에서 여권 2개를 발급받았는데 보석 당시엔 변호인단이 2개 모두 보관하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해 5월 법원이 이 중 1개를 열쇠로 잠긴 케이스에 넣어 곤 전 회장이 휴대하도록 하되, 변호인단이 열쇠를 관리하도록 허가했다. 이를 감안하면 곤 전 회장이 일본을 불법적으로 빠져나갔지만 레바논 입국 시엔 실제 프랑스 여권으로 제시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곤 전 회장이 오는 8일(현지시간)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기자회견을 열 것이라고 로이터통신 등이 전했다. 베일에 싸인 도주 과정의 전모가 드러날지 관심이 모아지는 가운데 파이낸셜타임스(FT)는 레바논 정부가 지난달 일본 정부에 곤 전 회장의 신병 인도를 요청했으며 이번 도주에서도 레바논의 관여 가능성을 거론했다.
레바논 정부도 일단 수사에는 착수했다. 알베르트 세르한 레바논 법무장관은 이날 “곤 전 회장에 대한 인터폴의 ‘적색수배’ 요청이 접수됐으며 검찰은 임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해 그의 소환 조사 가능성을 시사했다.
경유지였던 터키에서도 수사가 진행 중이다. 이스탄불 경찰청은 이날 곤 전 회장의 터키 경유를 도운 혐의로 비행기 조종사 4명을 포함해 7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지난달 29일 오후 11시쯤 곤 전 회장을 태워 일본 간사이(關西)공항을 떠나 터키 이스탄불로 향한 민간 제트기와 이스탄불에서 레바논으로 향한 민간 제트기 모두 터키 국적이었다.
곤 전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결백과 함께 일본의 사법제도를 강도 높게 비판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도주와 관련해 일본의 ‘인질사법’ 논란이 다시 도마에 올랐기 때문이다. 일본에선 피의자가 혐의를 부인할 경우 구속을 장기화하는 경우가 많다. 도쿄지검 특수부도 곤 전 회장 수사에서 최장 23일인 구속기간에 수사를 마무리하지 못하자 별건 수사로 4차례나 체포를 반복했다.
곤 전 회장은 2018년 11월 보수 축소 등의 혐의로 구속됐다가 지난해 4월 보석으로 풀려나 가택연금 상태에서 재판을 기다리던 중 지난달 31일 레바논으로 도주한 사실이 확인됐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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