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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는 재앙이 아니라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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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감소는 재앙이 아니라 대안이다

입력
2020.01.03 04:40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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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출산은 국가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해악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인간이 노동력과 소비력으로만 치환되는 각박한 현 세계에서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마냥 축복할 수 있을까.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은 인구 감소로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다고 역설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저출산은 국가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해악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인간이 노동력과 소비력으로만 치환되는 각박한 현 세계에서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마냥 축복할 수 있을까.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은 인구 감소로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다고 역설한다. 게티이미지뱅크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올해부터 한국은 생산 가능 인구(15~64세)가 줄어드는 인구 절벽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사망자가 출생아 보다 많아 자연 인구가 감소하는 ‘데드 크로스’도 임박할 거란 전망이다.

하지만 가임 여성의 평생 출생아 수를 뜻하는 합계출산율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0.9명 대로 올라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출산율 제고에 100조원이 넘는 돈을 쏟아 부었는데도 백약이 무효다. 뾰족한 대책이 없으니 섬뜩한 경고만이 여기저기서 빗발친다. ‘민족사 최대 재앙’ 이라거나 망국론에 이어 국가 소멸론까지 나오는 지경이다.

하지만 일본의 대표적 지성 우치다 다쓰루(70) 고베여학원대학 명예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우치다 교수는 인구 감소는 위기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꿈꿔볼 수 있는 기회이자, 대안이라 역설한다.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은 책 제목 그대로 인구 감소 사회를 둘러싼 우려와 편견을 가볍게 비틀어 버리는 책이다. 우치다 교수가 편집자이자 저자로 참여한 이 책은 인류학, 사회학, 지역학, 정치학 등 분야별 전문가 10명이 저출산, 저성장 시대 일본의 인구 감소에 대해 다각도로 고찰한 글을 엮은 것이다. 인구 감소 시대를 공포가 아닌 축복으로 연착륙시키려는 아이디어들이 가득하다.

저출산은 국가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해악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인간이 노동력과 소비력으로만 치환되는 각박한 세계에서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과연 축복할 수 있을까.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은 인구 감소로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다고 역설한다. 한 산부인과 전문병원 신생아실에 갓 태어난 아이들이 잠들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저출산은 국가의 경쟁력을 갉아먹는 해악으로 치부된다. 그러나 인간이 노동력과 소비력으로만 치환되는 각박한 세계에서 또 다른 생명의 탄생을 과연 축복할 수 있을까.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은 인구 감소로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다고 역설한다. 한 산부인과 전문병원 신생아실에 갓 태어난 아이들이 잠들어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책은 인구 감소를 절대악(惡)으로 몰아가는 ‘자본가의 시선’부터 경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구조주의 생물학의 권위자인 이케다 기요히코는 호모 사피엔스 역사상 70억 인구가 생존하는 지금을 ‘비정상적 과포화 상태’라 진단한다. 물, 식량, 에너지, 자연환경, 교육 의료 지원 등 어느 하나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못하는 현실은 분명 문제가 있다. 그럼에도 인구가 계속 증가해왔던 이유는 단 하나.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굴러가는 자본주의를 지탱하기 위해서였다.

자본가들은 인구 감소가 경제위기로 이어진다고 우려한다. 인구가 줄어들면 소비시장이 위축되고 노동력이 감소하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경제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 하지만 이 역시 저성장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는 계산법일 뿐이라고 책은 일갈한다. 인구가 지금보다 줄어드는 것은 위험한 게 아니라 오히려 최적의 환경을 찾아가는 자연스러운 과정이란 설명이다.

그래도 문제는 남는다. 당장 새롭게 도래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어떻게 대비하며, 고령화된 사회의 복지 등 급증하는 사회 비용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나. 책은 인구 감소 사회에 맞게 사회 시스템 전반을 혁신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일본에서 인공지능과 경제학의 관계를 선구적으로 연구해온 이노우에 도모히로는 ‘두뇌자본주의로의 전환’을 제안한다. 그는 인공지능 로봇과 경쟁해야 하는 미래의 세계경제는 노동자의 머릿수가 아니라 사람들의 두뇌 수준이 한 나라의 GDP와 기업의 수익을 결정하게 될 것이라 전망한다.

두뇌자본주의는 노동자가 부가가치를 생산하지 못하는 무가치 노동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 개인의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게 핵심이다. 이노우에는 일본 경제를 쇠락에 빠트린 건 ‘저출산 고령화’가 아니라 ‘지력(智力)의 쇠퇴’라고 일갈하며, 정부와 대학 기업 등 모든 조직이 지력을 키울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처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인구 감소 사회는 위험하다는 착각

우치다 다쓰루 외 공저ㆍ김영주 옮김

위즈덤하우스 발행ㆍ296쪽ㆍ1만5,000원

이 밖에도 책에는 인구 감소 시대를 대비한 역발상 처방전들이 여럿 제시된다. 인구가 계속 빠져나가는 지방을 살리기 위해, 공영주택과 문화시설을 제공해 젊은 부부들을 불러 모으고 마을 전체를 육아 친화시설로 바꿔나가는 노력으로 일본에서 가장 높은 출생률을 기록한 오카야마현 나기초 마을의 사례는 꽤 희망적이다. 고령 인구 부양 문제도 돈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서부터 해법을 찾을 수 있다.

인구 감소 시대에는 대외정책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국제정치학자인 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는 인구 감소 시대에 군사적 대국화를 지향하는 것은 자살행위라고까지 지적하며 힘이 아닌 평화 질서를 새롭게 만드는 데 일본의 역할이 있다고 강조한다.

‘더 많이, 더 크게, 더 높이’ 성장만 고집해온 인류에게 인구 감소로 인한 축소 사회의 미래는 낯설지 모른다. 그러나 성장이 아닌 사람에 집중할 때 개인은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책은 말한다. 사람이 생기를 갖고 살아갈 수 있는 사회, 위기가 와도 무너지지 않는 사회를 마련한다면 미래 세대는 얼마든지 탄생할 수 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헬조선을 바꿔나가는 일이야말로 가장 효과 빠른 저출산 대책일 수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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