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삶과 문화] 복제와 보편

입력
2020.01.03 04:40
31면
0 0
서울 연남동에 수제맥줏집이 있다고 해서, 군산 중앙동에 수제맥줏집이 생기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이상하다. 이들은 자신이 관광객이라고 해서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다. 새로운 형태의 상권의 확산은 복제라기보다는 보편이다. 사진은 부산 해운대의 ‘해리단길’. 전혜원 기자
서울 연남동에 수제맥줏집이 있다고 해서, 군산 중앙동에 수제맥줏집이 생기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이상하다. 이들은 자신이 관광객이라고 해서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다. 새로운 형태의 상권의 확산은 복제라기보다는 보편이다. 사진은 부산 해운대의 ‘해리단길’. 전혜원 기자

3년 전, 백령도 롯데리아가 SNS에서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되어 있고, 점박이 물범이 찾아오는 자연의 섬에 롯데리아라니, 패스트푸드라니. 개점 준비 중인 백령도 롯데리아를 찍은 사진 아래는 부정적인 댓글이 줄을 이었다.

‘누가 햄버거 먹으러 백령도에 가나.’ ‘자연을 느끼러 백령도에 가는데, 백령도까지 도시와 비슷해졌다.’ ‘백령도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롯데리아.’ ‘백령도의 경관을 망쳐버렸다.’

하지만 난 백령도 롯데리아 사진을 보고 관광객이 아닌 백령도 사람들이 떠올랐다. 학창시절 내가 살던 도시에 패스트푸드점이 처음 문을 열었을 때 난 얼마나 설렜던가. 1980년대 말이었으니, 서울에 롯데리아가 처음 문을 연 지 10년이 지났을 때였다. 내가 살던 도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대도시였지만, 최신 트렌드였던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를 먹기 위해 서울보다 1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당시 서울에는 이미 수십 개의 매장이 문을 열었을 때였지만 말이다. 그러고도 30년 가까이 지나 백령도 사람들도 최신(?) 트렌드인 패스트푸드 햄버거를 먹을 수 있게 됐다.

‘좋겠다. 그 동안 햄버거가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햄버거 하나 먹으려면 뱃길로 4시간을 나와야 했을 텐데.’

이 경우는 어떨까? 요즘 힙하다는 상권 유형이 있다. 오래된 동네, 낮은 건물, 느린 자동차, 세월을 리모델링한 가게가 모여 상권을 만들어낸다. 이때 거의 세트처럼 등장하는 가게들이 있다.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와 레스토랑, 수제맥줏집, 마카롱가게, 독립서점. 기존의 상업시설ㆍ상업거리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 프랜차이즈의 시스템이 아닌 사람의 손과 개성을 앞세운 거리에 사람들은 매료됐다. 이런 유의 상권은 서울에서 시작되어 전국의 도시로 퍼져나갔다. 비슷한 구조의 상권이 전국에 생기면서 획일화에 대한 비판이 일기 시작했다. ‘애초에 이런 상권이 사랑을 받았던 것은 기존의 상권과는 다른 구조 때문이었는데, 모두가 다 비슷해졌다’ ‘거리 이름마저도 비슷하다’ ‘경리단길과 차별성이 없는 ‘○리단길’을 뭣 때문에 찾아가겠냐’는 비판이다. 그런데 이런 비판은 이곳을 관광지로 볼 때 적용 가능한 비판이다. 관광객 입장에서 A지역과 B지역의 차별성이 없을 때 굳이 B로 갈 이유가 없다. 하지만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가? 수제맥주, 독립서점과 같이 유행을 이끌고,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고, 맛있는 독특한 가게들은 예전엔 거의 서울에만 있었다.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그런 멋진 공간에서 멋을 부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멋진 공간들이 군산에도, 공주에도, 김해에도, 경주에도 생겨나고 있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이런저런 공간을 보아온 사람들은 다 똑같다는 식의 비판을 한다. 하지만 이런 상권은 관광객에게는 여러 선택지 중 하나인 관광지이기도 하지만,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일상을 함께할 공간이다. 그러니 서울 연남동에 수제맥줏집이 있다고 해서, 군산 중앙동에 수제맥줏집이 생기는 것을 비판하는 것은 이상하다. 이들은 자신이 관광객이라고 해서 그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망각한다. 새로운 형태의 상권의 확산은 복제라기보다는 보편이다.

이상한 점은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많은 지역이 관광지가 되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도 해당 도시의 변화를 관광지와 관광객의 시각으로만 해석하려 한다.

이동이 점점 편해지고, 시간의 여유도 생기고, 관심도 다양해지면서 도시의 많은 부분이 일상 생활을 하는 곳과 관광지의 개념이 섞여 가고 있다. 이로 인해 관광객을 배척하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하지만, 많은 지역에서는 일상과 관광이 잘 어우러져 가고 있다. 이런 곳을 하나의 잣대로만 비판할 이유는 없다.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