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평등과 상호 존중에 중점을 두고 좀 더 현대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사적 관계를 공식화하고 싶었습니다. 이제야 누구나 서로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현대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네요.”
2010년에 만나 4세와 2세인 두 자녀를 두고 영국 런던에서 살고 있는 리베카 스타인펠드(38)와 찰스 케이단(43) 커플은 ‘등록 동반자(Civil Partnership) 관계’가 된 소감을 일간 가디언에 이 같이 밝혔다. 영국은 동성애자 커플의 법적 부부에 준하는 기본권 보장을 위해 2004년부터 ‘등록 동반자법’을 시행 중이다. 지난달 2일부터 이 법은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 한해 이성애자 사실혼 커플에게도 적용됐다. 스타인펠드와 케이단이 2014년 이 법을 이성애자에게 허용하지 않는 것은 인권법과 배치된다며 위헌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6월 최종 승소한 결과다.
스코틀랜드와 함께 이달부터 동성 결혼이 허용되는 북아일랜드에서도 등록 동반자법을 이성애자 커플에게 확대 적용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가디언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외신은 이날 “동거 가족은 영국에서 지난 20년간 2배 이상 늘어 가장 빠르게 증가하는 가족 형태”라며 스타인펠드와 케이단의 동반자 등록 소식을 비중있게 다뤘다.
등록 동반자는 상속, 세금, 연금, 양육, 친척관계 등과 관련해 법적 배우자와 유사한 대우를 받는다. 구속력이 있는 합의이기 때문에 결별 시에도 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하지만 결혼 제도에 포함돼 있는 종교적ㆍ성차별적 의미는 생략된다. 영국의 전통적 결혼식에는 신부의 ‘복종 서약’이 들어 있고, 혼인증명서에는 신랑과 신부 양측의 아버지 이름만 기재하게 돼 있다. 반면 동반자로 등록할 때는 커플의 양친 이름을 모두 적는다. 스타인펠드와 케이단 커플은 “결혼이라는 오래된 제도는 여성을 소유물로 취급하고 여성의 선택권을 제한해왔다”면서 “우리는 아이들이 현대적이고 균형 잡힌 등록 동반자로 자라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올해 이성애자 커플 8만4,000쌍이 등록 동반자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혼인과 혈연으로 묶인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희미해지는 현상은 영국만의 일은 아니다. 많은 유럽 국가가 사실혼 관계의 커플에게 법적 부부에 준하는 기본권을 보장해주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놓고 있다. 프랑스는 1999년부터 ‘시민연대계약(PACs)’을 도입해 결혼하지 않은 동거 커플도 사회복지서비스 등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스웨덴에도 삼보(Sambo)라는 등록 동반자법이 있어 파트너가 법적인 보호자에 준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스웨덴의 삼보 커플은 180만명에 이른다.
이성애자 커플의 동반자 등록이 가능해지면서 영국 출산율에 미칠 영향도 주목된다. 유럽연합(EU)에서 출산율이 가장 높은 프랑스는 PACs 도입으로 전통적인 가족 개념을 깨고 혼외 출산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이면서 출산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평가된다.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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