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미리 보는 2020
10개국 참가 아세안 의장국 비롯 국제회의ㆍ행사 300여개 주도
2년 연속 7% 경제성장을 이루며 지난해 동남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회원국 가운데 가장 역동적인 한 해를 보낸 베트남은 올해에도 적잖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음주운전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시피 하던 이 나라에 음주운전 전면 금지법이 새해부터 작동하기 시작했고, 동성애자를 투석사형시키는 이웃 나라와 달리 동성애ㆍ성전환 수감자를 별도 공간에 머물게 하는 등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의식도 생겨났다. 정치적 안정과 견고한 성장을 바탕으로 사회 변화에도 적극 대응하고 있는 베트남이 ‘아세안 맹주’를 향해 올해에도 거침없는 질주를 준비하고 있다.
◇ 아세안 의장국… 국제회의ㆍ행사 300회
단연 아세안 의장국 역할 수행이 가장 눈에 띈다. 10개 회원국 정상들이 모이는 상반기 아세안 정상회의, 이들 회원국에 더해 한국ㆍ중국ㆍ일본 등 대화상대국 정상들까지 모이는 하반기 아세안+3 정상회의,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다자안보협의체인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등 300여회의 국제회의 및 행사가 올해 베트남에서 열린다. 지난달 19일 정부 영빈관에서 외신기자들과 만난 응우옌꾸옥중 외교부 차관은 “베트남 정부는 만반의 준비가 돼 있다”고 자신감을 보였다.
올 한 해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베트남이 내건 슬로건은 ‘결속과 대응’이다. 알파벳 순으로 돌아가면서 의장을 한 번씩 맡는 회원국들은 역내에서는 물론, 글로벌 외교무대에서 ‘아세안’의 이름으로 자국의 이익과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애쓴다. 베트남이 남중국해 분쟁 상대국인 중국을 상대로 지난해에 강도 높은 대응으로 일관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올해에는 중국도 남중국해에서 베트남을 가급적 자극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베트남은 올해부터 2년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비상임이사국으로도 활동한다. 안보리 이사국 수임은 2008년에 이어 두 번째다. 베트남 정부는 다른 주변국들과 달리 아세안 의장국과 안보리 이사국 지위를 동시에 갖게 된 올해를 베트남의 외교 역량을 극대화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로 판단하고 있다.
◇ 창당 90주년 등 다양한 기념행사
공산당 일당체제인 베트남은 당 서기장을 정점으로 주석ㆍ총리ㆍ국회의장 등이 권력을 분점하고 있다. 2018년 9월 쩐다이꽝 주석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주석 자리를 응우옌푸쫑 서기장이 겸하면서 베트남 역사상 가장 강력한 권력자가 됐다. 내년 초 5년마다 열리는 선거(전당대회)에서 현 지도부가 재신임을 받아야 하는 만큼 각종 홍보와 국민 결속을 꾀하는 행사들이 1년 내내 이어질 전망이다.
대표적인 게 공산당 창당 90주년(2월 3일) 행사다. 국가 차원의 성대한 행사는 물론, 연중 사회과학 분야 세미나와 축하 행사가 전국 곳곳에서 열릴 예정이다. 현지 일간 ‘년연(인민)’은 “수많은 예술 프로그램들이 전국에서, 특히 호찌민 전 주석에 헌정된 유적지들을 중심으로 열릴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올해는 베트남의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호찌민 전 주석이 탄생한 지 130주년(5월 19일)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쫑 서기장은 호찌민 주석의 탄생과 공산당 창당을 연계한 다큐멘터리, 사회과학영화 제작, 관련 전시회 개최를 지시했고, 이에 따라 해당 기관들이 벌써부터 분주히 움직이고 잇다고 년연은 소개했다.
이와 함께 독립 75주년(9월 2일), 베트남전 승전 45주년(4월 30일) 등 사회주의 국가들이 중시하는 ‘꺾어진 해’가 올해 몰려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호찌민시(인민위원회)는 남부 해방, 통일 45주년을 기념하는 음악ㆍ공연 공모전을 진행하고 있다. 호찌민시는 사이공의 새 이름이다. 남부 지방정부의 한 관계자는 “모두가 베트남 사람들의 결속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며 “중앙뿐만 아니라 각 단위 지방정부들도 가장 분주한 한 해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다양한 이벤트로 대내외에 국력 과시
경제활력이 저하되고 있는 중국을 대체할 글로벌 성장동력으로 평가받는 베트남은 올해 급신장하고 있는 국력을 대내외에 과시하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들도 준비하고 있다. 하노이에서 꿈의 자동차 경주로 불리는 포뮬러원(F1) 대회를 개최하는 게 대표적이다. 지난해 아세안에서는 말레이시아에 이어 두 번째로 국민차(빈패스트)를 갖게 된 베트남은 이 대회를 계기로 자동차산업국으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겠다는 방침이다. ‘베트남의 삼성’으로 불리는 최대 민간기업 빈그룹이 이 대회를 후원하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스포츠 강국으로의 도약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동남아시아에서 최고 인기인 축구를 국력 과시의 수단으로 삼고자 하는 열망은 어느 때보다 높다. 지난달 처음으로 동남아시안(SEA)게임에서 우승을 차지한 베트남 축구팀은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챔피언십 대회 참가를 위해 새해 벽두 태국으로 출국했다. 지난달 SEA게임 축구 선수단 환영행사에는 응우옌쑤언푹 총리가 직접 참석해 “강력하고 번영하는 베트남 건설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선수들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박충건 베트남 사격 국가대표팀 감독은 “베트남 정부는 스포츠를 국민통합과 자긍심 고취의 통로로 삼고 있으며 이는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의 동력으로도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호찌민=정민승 특파원 ms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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